벗이란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이릅니다. 우현이는 저와 한 세대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벗입니다. 사진 속의 우현이는 초등학교 입학 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본관을 오르는 계단 입구 난간에 축구공을 옆에 끼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잔디는 아직 누렇고, 화분에 꽃이 심겨진 것으로 보아 초봄으로 보입니다. 우현이는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노는 날이면 이렇게 아빠·엄마 사무실에 나타나 뛰어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우현이의 아빠를 만난 다다음해에 우현이는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김포에 살던 시절, 우현이네 집과는 버스 두세 정거장 사이였습니다. 우현이는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땅 미술사학의 태두 고유섭 선생의 아호와 같습니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미술의 근대적 학문체계를 이루어 낸 선구자입니다. 저는 그 시절 삶의 허망함을 이 산하에 널려있는 문화유산 답사에서 위무를 삼았습니다. 저는 주말이면 우현이를 보러 갔습니다. 이제 아장걸음을 옮기던 우현이를 가슴에 안고 아파트 단지 내 슈퍼로 향합니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짖는 우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우현이는 자라면서 탐나는 장남감이 있으면 주말을 기다렸다가, 저를 보면 손을 잡고 단지 내 완구점으로 이끌었습니다. 우현이는 아빠를 닮아서인 지 입내를 잘 냈습니다. 저는 우현이를 보면 일단 잔등을 두드리며 ‘우리 미련한 우현이 새~~끼’하며 저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항상 웃음으로 반겨주던 우현이가 어느 날 무엇인가 삐치었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대뜸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미련한 ○ ○ 삼촌 새~~끼’. 단순한 입내였을까요. 아니면 우현이의 내색이었을까요.
우현이가 초등학교 2 ~ 3학년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우현이네는 김포에서 강화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빠·엄마가 사무실 일이 바쁘면 가끔 제가 우현이의 하교를 챙겼습니다. 아참! 그때 우현이의 가방은 제가 입학 선물로 마련한 것입니다. 우현이의 손을 잡고 김포 홈플러스까지 원정 가서 마련한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애들 책가방이 그렇게 비쌀 줄 몰랐습니다. 우현이에게 마음에 드는 가방을 집게 했습니다. 애들 눈은 정확합니다. 실내화가방까지 곁들인 그 가방은 매장에서 가장 비쌌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우현이가 졸음을 참는 낌새가 완연합니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오후햇살에 우현이의 눈꺼풀이 무거워지나 봅니다. 그때 우현이가 뜬금없는 소리를 합니다.
“삼촌, 요즘 나 너무 힘들고 피곤 해.”
저는 어이가 없어 한마디 거듭니다.
“아니, 우현이가 뭐 하느라고 그렇게 피곤 해.”
우현이가 말했습니다.
“매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오면 숙제해야 되잖아. 애기 때는 과자 먹고, 잠만 자면 됐는데.”
우현이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지, 이내 고개방아를 찢기 시작합니다. 이제와서 돌이켜 생각하니 우현이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의 교육제도는 전인적 인간형의 완성이 아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승부기계 만들기에 다름 아닙니다. 아동가학시스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못난 어른들이 만든 가혹한 시스템에 대한 어린 우현이의 고발이었던 셈 입니다. 어느덧 우현이가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됩니다.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시스템 속에서 허덕이는 우현이가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맑은 영혼을 간직한 우현이가 잘 이겨내리라라고 서해의 작은 섬에서 삼촌이 응원을 보냅니다. 아기 우현이를 생각하며 저는 환하게 웃음 짓습니다. 한 손을 제게 내밀며 떠듬떠듬 말을 건넵니다. "삼-- 촌-- 까--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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