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10

뒷집 새끼 고양이 - 40

어미 노순이의 뒤를 새끼 흰순이가 뒤따르고 있다. 흰순이가 세상 빛을 본지 넉 달이 지났다. 이제 녀석은 어엿하게 자라 혼자 개구리 사냥에 힘을 쏟았다. 열배 째 새끼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흰순이에 대한 노순이의 모성애는 유별났다. 나오지도 않는 젓을 물리면서까지 품에 껴안고 지냈다. 노순이는 중성화수술을 받아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다. 열 살의 나이에 열 배를 낳은 노순이의 노화는 애처로울 정도였다. 이빨이 듬성듬성 빠져 고양이 사료를 제대로 씹지도 못했다. 뒷집 형이 쓰러져 대도시 대학병원에 입원한 지 석 달이 다 되었다. 뒷집 형수는 말그대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형수는 그 넓은 고추밭에서 살다시피했다. 혼자 고추를 수확해 집으로 끌어들여 세척했다. 어머니와 아랫집 할머니가 고추꼭지를 따고 반..

굴암돈대에서 바다를 보다.

주문도 살꾸지항 오전 8:25 삼보6호 1항차에 승선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대학병원에 시간맞추어 도착해야 했다. 일주일전 찍은 어머니의 뇌 PET-CT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길이다. 10:40에 병원에 도착했다. 월요일이다. 병원 주차장 빈 공간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주차공간이 아닌 석축에 기대어 길게 차를 세웠다. 원래 진료시간은 오후에 잡혀 있었다. 섬의 불편한 교통사정을 얘기했다. 편의를 봐 달라고. 운이 좋았다. 예약자가 빠진 빈 순서에 끼어들 수 있었다. 앞 순번 환자의 진료 시간이 길어지면서 애가 탔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의사는 CT 사진을 보며 설명했다. 나의 예상대로였다. 파킨슨 초기 진단이 떨어졌다. 병원앞 약국에 처방전을 내밀며 말했다. “1분1초가 급합니다. 최대한 빨리 약을 ..

거미는 알고 있었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 캄캄함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시인 이면우의 「거미」(『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 2연이다. 1연은 아침이슬 반짝이는 오솔길을 걷던 시인은 고추잠자리가 걸린 거미줄을 만났다. 3연은 고추잠자리로 다가가는 거미, 시인은 허리를 굽혀 거미줄 아..

식물植物의 근력筋力

움직일 수 없고, 생각도 할 수 없으나 스스로 숨은 쉴 수 있는 상태를 '식물인간'이라고 한다. 아침 산책을 나섰다. 작은 섬을 지독한 안개군단이 포위했다. 가시거리가 고작 10여m를 넘어설까. 느리항․살꾸지항 첫 배는 모두 결항되었다. 반환점 바위벼랑이 코앞이다. 해안에 바투 다가선 산사면은 직각에 가까웠고 아까시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 담쟁이가 나무 꼭대기까지 줄기를 타고 올라갔다. 관목을 칡과 으름이 덮었다. 바야흐로 짙은 녹음을 덩굴식물이 평정한 것 같았다.제방을 덮은 시멘트 포장과 아까시나무 군락 사이의 좁고 긴 띠는 오랜 시간 해안에서 날려 온 모래가 쌓였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보라색 꽃이 눈길을 끌었다. 바닷가에서 짠물을 뒤집어쓰고도 잘 자라는 순비기나무였다. 우리나라 남해․서해의 해..

후투티를 다시 만나다 - 3

아무리 무딘 이라도 한반도를 물구렁텅이로 만든 계묘년癸卯年 장마를 견디며 기후 재난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니 한반도 기후는 이제 온대가 아닌 아열대가 분명해졌다. 장마가 아닌 우기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비가 귀한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를 물폭탄이 공습했다. 비가 주춤거리는 틈에 저녁 산책에 나섰다. 섬 중앙에 솟은 해발 146m의 봉구산은 해변까지 자락을 드리웠다. 짧은 골짜기를 치내려온 빗물이 시멘트 구조물 노깡으로 세차게 쏟아졌다. 갯벌이 크게 파여 쓸려나갔다. 빗물을 머금은 산은 몇날며칠 담수를 바다로 흘려보낼 것이다. 갈매기 수십 마리가 담수에서 목을 축이고 깃을 다듬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새들은 인간보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대책을 강구할 수..

맹꽁이의 아지트

저 건너 신진사申進士 집 시렁 위에 청동청정미靑銅靑精米 차좁쌀이씰어 까불어 톡 제친 청동청정미 청자좁쌀이냐아니 씰어 까불어 톡 제친 청동청정미 청자좁쌀이냐아래대 맹꽁이 다섯 우대 맹꽁이 다섯동수구문東水口門 두 사이 오간수五間水 다리 밑에울고 놀던 맹꽁이가 오뉴월五六月 장마에 떠내려 오는헌 나막신짝을 선유船遊배만 여겨 순풍順風에 돛을 달고명기명창名妓名唱 가객歌客이며 갖은 풍류風流 질탕跌蕩하고배반盃盤이 낭자狼藉하여 선유船遊하는 맹꽁이 다섯 ~ ~ ~  1910년부터 불린 맹꽁이 타령은, 당시의 사회상과 민중의식을 재미있게 표현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민족과 친근하기 그지없었던 맹꽁이는 현재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2급 야생생물이다. 맹꽁이는 낮에는 논둑이나 밭둑, 산기슭에 뒷다리로 굴을 파서..

뒷집 새끼 고양이 - 39

열흘 전이었다. 한낮 무더위를 피해 푸른 여명이 터오는 것을 보며 텃밭의 김매기를 마쳤다. 아침 밥상을 차리는데 뒤울안에서 노순이의 애가 끊는 울음과 새끼의 칭얼거림이 들려왔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양파․마늘․쪽파를 그물망에 넣어 말리려 뒤울안으로 돌아섰다. 노순이가 새끼 두 마리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봉구산 등산로로 연결되는 옛길 경사면의 화계와 우리집 뒷벽의 길고 좁은 공간이 뒤울안이다. 수돗가와 보일러실이 양 모서리에 자리 잡았다. 겨울 아궁이에 군불을 지필 나뭇단과 평상이 벽에 기댔다. 평상 위에 골판지 박스가 창턱 아래까지 쌓였다. 창문에 화계의 꽃과 나무가 얼비치었다. 박스 위에서 세 모녀가 엉킨 채 잠들었다. 아마! 새끼들이 높은 곳에 올라서지 못해 어미는 속이 상했는지 모르겠다. 노순..

하지夏至의 감나무

이미지는 2023년 계묘년癸卯年 우리집 텃밭가의 감나무입니다. 바야흐로 절기는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드는 열 번째 하지夏至입니다. 하지는 연중 낮이 가장 긴 날로 낮이 긴만큼 밤도 가장 짧은 날입니다. 옛부터 하짓날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했습니다. 어제 점심 무렵부터 줄금거리더니 해가 떨어지고, 제법 빗줄기가 굵어졌습니다. 오늘 하지 아침 7시까지 서해의 작은 외딴섬 주문도의 강수량은 22mm가 쏟아졌습니다. 이제 비는 거의 다 내린 것 같습니다.우리집 감나무는 두 그루입니다. 뒤울안 수돗가의 감나무는 텃밭 일을 마치고 발을 씻는 어머니께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사시사철 새들이 날아와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녀석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직박구리, 산비둘기, 참새, 멧새, 노랑턱멧새..

뒷집 새끼 고양이 - 38

위 이미지는 노순이가 새끼 두 마리에게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이대자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의 모성본능으로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노순이가 열배 째 새끼를 낳은 지 스무다섯 날이 되었습니다. 세 마리를 낳았는데, 털빛이 온통 흰 놈과 검은 바탕에 흰 빛 얼룩이, 그리고 어미를 닮은 노란빛이었습니다. 노란빛 새끼가 일찍 어미 곁을 떠났습니다. 노랑이는 그동안 자신만이 아는 비밀장소에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감나무집 고구마밭 넝쿨 속에, 허름한 마당 창고의 한켠 구석에, 앞산 소나무둥치에 버려진 가빠 뭉텅이 속에······. 새끼를 혼자 낳고 하루이틀이 지나 어미는 배가 고파 집에 들어왔습니다. 뒷집 형과 형수는 배를 채우고, 새끼에게 돌아가는 노순이의 뒤를 밟아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안고 돌아왔..

고라니는 쓸개가 없다 - 4

내가 사는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뜨이는 야생동물이 고라니입니다. 고라니는 우제목 사슴과로 몸집이 노루보다 약간 작습니다. 노루와 고라니의 다른 점은 노루의 수컷은 뿔이 있지만 고라니 수컷은 큰 송곳니가 입 밖으로 삐죽 나왔습니다. 고라니 울음은 뼛속까지 울리는 극한의 고통을 나타내는 데시벨입니다. 섬에서 처음 들은 단말마에,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덫이나 올가미에 걸려 죽어가는 고라니였습니다. 무지가 빚어 낸 착각이었습니다. 녀석의 울음은 자기 영역을 침범한 다른 고라니를 쫓아내려는 경고음, 암컷 고라니를 향한 구애 세레나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위협 소리라고 합니다. 산책을 나설 때마다 대여섯 마리가 눈에 띄는 고라니는 믿을 수 없게, IUCN(국제자연보전연맹)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