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 16

초록의 어두운 부분

책이름 : 초록의 어두운 부분지은이 : 조용미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실천문학사, 1996) /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오르다』(창비, 2000) /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문학과지성사, 2004) /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문학과지성사, 2007) / 『기억의 행성』(문학과지성사, 2011) / 『나의 다른 이름은』(민음사, 2016) / 『당신의 아름다움』(문학과지성사, 2020) 시인 조용미는 1990년 『한길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길문학』의 생명은 짧았다. 창간호는 월간지로 시작했으나 계간지로 바뀌었고 그마저 단명했다. 그때 시인은 ‘한길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력詩歷이 30여년을 넘어섰다. 『초록의 ..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책이름 :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지은이 : 카를로 로벨리옮긴이 : 김정훈펴낸곳 : 쌤앤파커스 전 세계 40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들의 누적 판매 부수는 200만부 이상을 기록했다. 그런대로 천체ㆍ이론물리학자의 책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인가보다. 서둘러 군립도서관의 책을 검색했다. 『보이는 세상은 실제가 아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첫 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시스』. 다행스럽게 번역된 책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나의 도서대여 목록에 즐겨 찾을 저자가 추가되었다.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1956- )는 이탈리아 태생의 이론물리학자였다. 그는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 개념..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책이름 :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지은이 : 이왕주펴낸곳 : 효형출판 글머리의 영화 제목은 국내 개봉 당시의 제목, 영화의 원제, 감독, 제작국, 제작년도 순이다. 트루먼 쇼 / The Truman Show / 피터 위어 감독 / 미국 / 1998년. 자기도 모르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온 세상에 노출되는 삶을 살아가는 트루먼을 그린. 프랑스 포스트모던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에 따르면, 카메라로 상징되는 다양한 검열의 코드 바깥으로 나서는 탈영토화의 주체, 유목민 만이 자유로운 삶의 주체라고.슈렉 / Shrek / 앤드류 애덤슨ㆍ비키 젠슨 감독 / 미국 / 2001년.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은 최초로 동화의 ‘바깥’ 삶을 보여준.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대상을 미학적으..

구수한 큰맛

책이름 : 구수한 큰맛지은이 : 고유섭엮은이 : 진홍섭펴낸곳 : 다할미디어 손에 펼친 『구수한 큰맛』은 2005. 8. 30. 초판1쇄였다. 2005년은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선생은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자ㆍ미학자였다. 1933년 개성박물관장을 역임하면서 키운 개성지역의 제1대 제자 3인은 불교사학자 황수영(黃壽永1918-2011),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순우(崔淳雨, 1916-1984), 미술사학자 진홍섭(秦弘燮, 1918-2010) 이었다.우현又玄은 우리나라 전역을 답사하여 유물유적과 미술작품을 연구했다. 선생은 미술작품과 문헌기록에 대한 고증적 연구를 통해 한국미술 연구 방법론을 체계화했다. 근대적 학문체계를 이룩한 선구적 미술사학자였다...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책이름 :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지은이 : 강정 외펴낸곳 : 문학동네 김언의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 이원하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덕규의 『오직 사람 아닌 것』. 〈문학동네시인선〉 101 ~ 199호까지, 내가 손에 든 시집은 단 세 권이었다. 나의 시적 취향은 분명 〈창비시선〉에 기울었다. 문학동네시인선이 2011년 첫 시집 최승호의 『아메바』를 펴낸지 12년 만에 200호를 출간했다. 티저는 예고편 형태의 짧은 광고를 가리켰다. 문학동네시인선 100호 기념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처럼 앞으로 시인선을 통해 시집을 펴낼 시인들의 신작시를 실었다. 안도현, 전동균처럼 시력 40년을 넘긴 중견시인부터 갓 등단한 이예우, 이진우 신인 시인까지 50인의 시를 ..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책이름 :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지은이 : 프랑수아 라블레옮긴이 : 유석호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풍요와 번영의 이면에 드리운 인간 정신의 황폐화에 대항하는 정신의 마르지 않은 샘’을 모토로 내세운 〈대산세계문학총서〉와 나는 그다지 인연이 깊지 않았다. 아르튀르 랭보의 『나의 방랑―랭보 시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 도연명의 『도연명 시집』에 이어 다섯 번째 잡은 책이었다.『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은 현실에서 행복과 진실을 추구하려는 인간중심적 가치관을 반영함으로써 프랑스 르네상스의 이상과 염원을 ‘그로테스크한 사실주의’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 1483-1553)는 그리스ㆍ로마 고전에 정통한 ..

해방일기 5

책이름 : 해방일기 5지은이 : 김기협펴낸곳 : 너머북스 상편이 완료되는 『해방일기 5』는 분단 건국의 일차적 책임이 미국에게 있는지를 미군정의 공산당 탄압, 좌우대립의 분수령인 ‘대구 사태’,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풀어냈다. 소련군은 진주하면서 일본인의 행정권과 경찰권을 인민위원회에게 넘겨주고 후원자의 위치에 섰다. 미군은 조선을 통치하던 총독부의 권력을 넘겨받아 스스로 통치자의 위치를 구축했다. 1946년 11월 이북은 선거를 통해 최고인민회의라는 의회를 만들었다. 이남의 입법의원 선거는 90명 의원 중 절반을 주둔군 사령관이 임명(관선의원)했고, 나머지 절반(민선의원)을 선출한 선거는 선거라고 할 수도 없는 개판이었다.5권의 부제는 ‘길 잃은 해방이 가져온 비극’으로, 시간대는 ..

해방일기 4

책이름 : 해방일기 4지은이 : 김기협펴낸곳 : 너머북스 『해방일기 4』는 해방공간 중 가장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새로운 ‘좌우합작’ 움직임, 미군정의 노골적 공산당 탄압 ‘정판사위폐사건’. 이북의 북조선노동당 창당으로 좌익의 주도권은 평양의 김일성으로 넘어가면서 입지가 좁아진 남로당의 박헌영은 극좌노선을 택했다. 80여년 전 우리 민족사회의 건강성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역사학자는 오늘날 그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이 땅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다.4권의 부제는 ‘반공의 포로가 된 이남의 해방’으로, 시간대는 1946. 5. 1 ~ 8. 30. 이었다. 차례는 6장으로 구성되었고, 각 장의 말미에 실은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는 저자와 안재홍 선생과의 가상대담이었다..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

책이름 :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지은이 : 김사이펴낸곳 : 아시아 『반성하다 그만 둔 날』(실천문학사, 2008)『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창비, 2018)『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아시아, 2023) 시인 김사이가 펴낸 시집들이다. 시인은 2002년 『시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두 번째 시집은 온라인 서적을 통해 손에 넣었고, 세 번째 시집은 군립도서관에서 대여했다. 시집은 출판사 《아시아》의 한영대역 시선집 시리즈 〈K-포엣〉의 서른두 번째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그동안 노동 현장의 부조리와 그 속에서 이중으로 고통 받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렸다. 시집의 구성이 특이했다. 부 구분없이 29편이 실렸고, 시인노트의 「돌아보다」는 자서시였다. 에세이로 「거기에 바다가 있다」, 시..

시인과 선창에서 막걸리를

도선 삼보12호는 아차도, 볼음도를 거쳐 서도 군도를 빠져 나와 석모도와 화도 장곶 사이 좁은 해협을 가로질러 강화도에 닿았다. 예전 삼보해운 배들의 정박지는 외포항이었다. 교동도와 석모도에 다리가 놓였고 항구에 모래가 쌓이면서 외포항은 선창의 기능을 잃었다. 주문도에서 석모도 어류정항까지 1시간이 걸렸다. 이쯤이면 몸이 굼실굼실한 승선객들은 객실에서 일어서 바깥풍경을 보기 마련이었다. 객실창을 통해 마주보이는 강화도 포구가 건평항乾坪港이었다.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가는 길이었다. 걸음걸이가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나는 2층 객실에 올라가지 않고 내내 차안에 있었다. 마주보이는 건평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머니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건평이구나! 하셨다. 당신은 그 시절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외삼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