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초록의 어두운 부분

대빈창 2025. 1. 24. 07:30

 

책이름 : 초록의 어두운 부분

지은이 : 조용미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실천문학사, 1996) /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오르다』(창비, 2000) /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문학과지성사, 2004) /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문학과지성사, 2007) / 『기억의 행성』(문학과지성사, 2011) / 『나의 다른 이름은』(민음사, 2016) / 『당신의 아름다움』(문학과지성사, 2020)

 

시인 조용미는 1990년 『한길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길문학』의 생명은 짧았다. 창간호는 월간지로 시작했으나 계간지로 바뀌었고 그마저 단명했다. 그때 시인은 ‘한길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력詩歷이 30여년을 넘어섰다. 『초록의 어두운 부분』은 여덟 번째 시집이었다. 나는 그동안 시인의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을 손에 들었다.

시인은 말했다. 위태롭고 불안한 실존이다. // 모든 시간 속에 있는 / 찰나적 영원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 전혀 새로운 봄이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1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박동억은 해설 「색채의 존재론―시적인 몸에 대하여」에서 말했다. “색채는 핵심적인 모티프로 색상보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생의 명도와 채도”라고. 시편들은 색色에 대한 향연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두, 초록, 분홍, 붉은, 검은, 노랑, 푸른, 흰······.

시집을 읽어나가면서 나의 눈길은 시인의 발걸음을 쫓고 있었다. 시인이 지극한 눈길로 오래 바라보면서 생의 정취를 빚어낸 곳을. 금몽암, 진불암, 클라우스 수사 예배당, 공재고택, 물야저수지, 천종사, 석적막산, 청별항ㆍ공룡알해변ㆍ낙서재ㆍ곡수당, 롱샹성당, 카보베르데, 린네식물원, 웁살라대학, 모슬포, 자하문, 상트페테르부르크······. 내가 잡은 시인의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은 마지막 시들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시 「색채감」(109쪽)의 2ㆍ3ㆍ4연이다.

 

이른 봄의 새 연두빛마다 마음을 빼앗기고 산자고 흰빛을 띤 연녹색에 매번 발걸음 멈추고 엎드렸다 푸른색은 항상 편애했고 초록색 크레용으로 태양을 그렸으며 검은색의 심연에 발을 들였고 에밀 놀테의 색채감에 매혹당했다 // 색채에 민감한 반응을 하게 된 것은 색채가 내게 감정을 투사했기 때문 내가 색채의 감정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나의 내면이 색채를 불러들인 것 나중의 일이다 // 세상의 모든 빛과 색에 미혹당해도 그 빛이 하나의 색임을 알게 된 것은 기쁨이 아닌 슬픔에 가까운 감정이었지만 세상의 붉고 푸르스름하고 노랗고 흰 빛들이 나를 함께 나누어 가지도록 나는 기꺼이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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