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지은이 : 강정 외
펴낸곳 : 문학동네
김언의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 이원하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덕규의 『오직 사람 아닌 것』. 〈문학동네시인선〉 101 ~ 199호까지, 내가 손에 든 시집은 단 세 권이었다. 나의 시적 취향은 분명 〈창비시선〉에 기울었다.
문학동네시인선이 2011년 첫 시집 최승호의 『아메바』를 펴낸지 12년 만에 200호를 출간했다. 티저는 예고편 형태의 짧은 광고를 가리켰다. 문학동네시인선 100호 기념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처럼 앞으로 시인선을 통해 시집을 펴낼 시인들의 신작시를 실었다. 안도현, 전동균처럼 시력 40년을 넘긴 중견시인부터 갓 등단한 이예우, 이진우 신인 시인까지 50인의 시를 모았다. 시인들의 이름이 사전 순으로 차례졌다.
시인들에게 ‘시란 무엇인가’라는 공통질문을 던졌고, 시인들은 한 문장으로 답했다. 짧고 긴 다양한 시인들의 대답은 시를 향한 그들의 간절한 고백이었다. 표제는 안희연의 글에서 따왔다.(99쪽)
“시는 신발,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데려가는 시는 탐색견의 코, 한 사람의 실종을 집요하고 용맹하게 추적하는.”
문학동네시인선 기획의원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서문에서 말했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이미 시인이 되어서가 아니라 매번 시인이 되기 위해서다.”(4쪽) 문학동네는 시인선 200호 기념으로 한정판 도서를 한 권 더 내놓았다. 1 ~ 199호 ‘시인의 말’을 모은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이다. 티저 시집 편집자는 말했다. “독자들이 시의 정의에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은 시인들의 문장에서 ‘시론의 정수’를 느껴보며 자신과 결이 맞는 시인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마지막은 강지혜의 「초식동물」(18-20쪽)의 1 ~ 10연까지이다.
나의 파잔은 언제 어디서부터인가 // 초식동물로 자라났다 //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 나는 유일한데 / 자의식과 꿈만이 다리를 만진다 // 셀피를 찍는 어린 코끼리 // 뒤에서 다가오는 맹수의 이빨을 / 평생 감각하면서 // 부드러운 귀와 / 아직 덜 자란 상아를 / 두들겨패는 몽둥이 // 덜덜 떨며 기다리면서 / 기다리다 날아오는 매를 / 情人처럼 반기면서 / 매질이 멈춘 순간을 / 되찾은 엄마 코끼리인 양 / 울부짖으며 반기면서 // 파잔이 끝난 기억은 없고 / 어느새 나는 커다란 / 공 / 위에 서 있었다 // 네 개의 발로 공을 굴리며 / 앞으로 / 뒤로 / 앞으로 // 긴 코를 들어 / 관객에게 인사를 / 비뚤어진 고깔모자를 바로잡는다 // (······)
p. s 파잔은 아기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잔혹한 고문이다. 야생에서 사로잡은 아기코끼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고 몇 날 며칠을 굶기고 때렸다. 절반에 이르는 코끼리가 죽음을 맞았고, 살아난 코끼리는 관광객들 앞에 서게 된다. 20여년이 다 되었다. 나의 유일한 해외여행은 태국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 따라다니며 코끼리 쇼장에서 박수를 치고, 코끼리트레킹 체험장에서 그들의 등에 올라탔다. 몰라서 짓는 죄였다. 남은 인생에서 비행기 탈일은 없을 것이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9) | 2025.01.21 |
---|---|
구수한 큰맛 (10) | 2025.01.20 |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10) | 2025.01.16 |
해방일기 5 (11) | 2025.01.15 |
해방일기 4 (9) | 2025.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