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굴암돈대에서 바다를 보다.

대빈창 2023. 9. 6. 07:00

 

주문도 살꾸지항 오전 8:25 삼보6호 1항차에 승선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대학병원에 시간맞추어 도착해야 했다. 일주일전 찍은 어머니의 뇌 PET-CT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길이다. 10:40에 병원에 도착했다. 월요일이다. 병원 주차장 빈 공간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주차공간이 아닌 석축에 기대어 길게 차를 세웠다. 원래 진료시간은 오후에 잡혀 있었다. 섬의 불편한 교통사정을 얘기했다. 편의를 봐 달라고. 운이 좋았다. 예약자가 빠진 빈 순서에 끼어들 수 있었다. 앞 순번 환자의 진료 시간이 길어지면서 애가 탔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의사는 CT 사진을 보며 설명했다. 나의 예상대로였다. 파킨슨 초기 진단이 떨어졌다. 병원앞 약국에 처방전을 내밀며 말했다. “1분1초가 급합니다. 최대한 빨리 약을 조제해 주세요.” 급히 약을 받았으나 내비에 뜬 도착시간은 20분을 넘겼다. 화도 선수항 오후 1:00 배를 타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선수항에 도착하자 삼보 6호가 포구에서 꽁무니를 돌려 바다를 항했다. 단 3분 차이로 배를 놓쳤다. 막배는 오후 4:30이다. 나는 세 시간을 흘려보내야만 했다. 그늘진 곳에 숨어들어 책을 펼치기에 마음은 여유가 없었다.

내가 외포항을 향해 해안도로를 탔다. 굴암屈岩 돈대墩臺 표지판이 보였다. 해안군부대를 지나쳐 돈대에 올랐다. 사람 그림자도 찾아볼 수없는 낯선 호젓함이 나의 가라앉은 기분을 도닥였다. 돈대석축에 올라 서해를 바라보았다. 양편에서 길게 뻗은 산줄기가 바다 가운데서 만날 듯이 마주보고 있었다. 왼편은 마니산이 중앙에 솟은 화도의 뻗어나온 장곶이고, 오른쪽은 관음도량 보문사가 자리 잡은 석모도의 포구 어류정이다. 터진 바다를 질러가면 내가 살아가는 서도西島 군도群島의 섬들이 나타날 것이다.

보름전 어머니는 뇌 MRI를 찍었다. 검사 결과가 나빴다. 뇌동맥의 약한 부분이 꽈리처럼 부풀어 올랐다. 일본의 농부철학자․시인 야마오 산세이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서 읽은, 시인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뇌동맥류 지주막하 출혈의 원인이었다. 수술은 머리뼈를 열고 부푼 꽈리 부분을 클립으로 묶어야만 했다. 고령의 어머니는 전신마취를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의사는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백중사리였다. 바다는 크게 부풀어 올랐다. 마음이 바빠졌다. 어머니는 이제 남은 생을 뇌동맥류腦動脈瘤와 파킨슨병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나는 화장실부터 손보았다. 신형 좌변기를 앉혔다. 벽에 어머니가 짚을 수 있는 손잡이를 부착했다. 미끄러지지 않게 욕실매트를 깔았다. 목욕의자를 들였다.  하루 세 번 어머니가 드실 약을 빠짐없이 챙겨드려야겠다. 나는 매일저녁 잠들기전 어머니께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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