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섬냥이들

대빈창 2023. 10. 10. 07:00

 

감나무집 ‘나비’의 출신은 대빈창 해변 길고양이입니다. 녀석은 4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3년 전 여름 방학 때, 감나무집 손자들이 할머니 집에 다니러 왔습니다. 해변에 놀러 나갔다가 ‘나비’를 품에 안고 돌아왔습니다. ‘나비’는 배를 곯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감나무집 형수를 하루 종일 쫓아 다녔습니다. 먹이를 챙겨주는 은인에 대한 녀석의 정 표현이겠지요. 나비는 어릴 적 배고픔을 잊지 않았는지 길고양이 한 마리를 챙겼습니다. 형수는 ‘나비’를 바보고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릇에 먹을 것을 채워주면 녀석은 길고양이가 먹고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뒷집 형수는 집을 비우면서 고양이들의 끼니를 부탁했습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가면서 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겼습니다.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마구 뛰어왔습니다. 저온저장고 입구 간이 창고에 노순이, 노랑이, 흰순이를 들여놓고 한 종지 사료를 부어줍니다. 녀석들이 사이좋게 사료그릇에 코를 박는 것을 보고 문을 닫았습니다. 재순이 몫으로 바깥 땅바닥에 한 종지 사료를 붓습니다. 식탐이 강한 재순이를 떼어 놓으려는 술수입니다.

별명은 ‘미련한 놈’이지만 재순이는 측은지심이 강한 고양이입니다. 흰 바탕에 엷은 누런 반점의 새끼 길고양이가 뒷집에 빌붙어 살았습니다. 녀석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쏜살같이 달려와 재순이 몫의 사료를 훔쳤습니다. 재순이는 어린 길냥이와 사료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도둑고양이 어미는 멀리서 새끼를 지켜보았습니다. 새끼 길고양이도 살이 통통하게 올랐습니다. 산책에서 돌아와 광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바깥으로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쫓아왔습니다.

이미지는 한로寒露에 마주친 대빈창 해변 길냥이들입니다. 공기가 차츰 선선해지면서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해가는 열일곱 번째 절기입니다. 대빈창 길냥이들은 하나같이 몸의 반점들이 지저분해 보입니다. 집고양이들은 선택적으로 고른 털을 지닌 녀석들만 키워지겠지요. 캠핑객들의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먹고 사는 녀석들은 자연선택으로 얼룩이 지저분한 털색으로 변해가는 유전의 힘일까요. 저녁 산책에서 되돌아오는데 고양이 세 마리가 해변 음용수대 상단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해가 나지 않아 을씨년스런 날이었습니다. 금방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녀석들은 온기가 그리웠을까요. 아니면 곧 닥칠 찬바람을 걱정하며 반상회를 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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