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거미는 알고 있었다.

대빈창 2023. 9. 1. 07:00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 캄캄함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시인 이면우의 「거미」(『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 2연이다. 1연은 아침이슬 반짝이는 오솔길을 걷던 시인은 고추잠자리가 걸린 거미줄을 만났다. 3연은 고추잠자리로 다가가는 거미, 시인은 허리를 굽혀 거미줄 아래를 지나 오솔길을 따라 갔다. 나에게 ‘거미’하면 시인 박성우의 등단작 「거미」와 함께 떠오르는 詩였다.

이미지의 거미는 집왕거미로 학명은 Neoscona nautica (L. Koch, 1875)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견되며 강변, 도시, 주변, 계곡, 논, 농경지, 산, 옥내, 평지, 수변에서 서식한다. 건물의 처마 밑이나 골목, 담장, 다리 또는 물가의 풀과 나무 사이에서 볼 수 있다.(국립중앙과학관 거미도감에서 발췌)

우리집은 봉구산 자락의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 내 방 창문을 열면 관음도량 보문사로 잘 알려진 석모도와 서도西島 군도群島 사이의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바다 위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거미는 슬라브 옥상 처마와 내방 벽 사이에 커다란 거미줄을 쳤다. 바람이 불때마다 거미줄 중앙에 자리잡은 녀석이 크게 흔들거렸다.

녀석은 주로 밤에 활동했다. 아침이 밝아오면 슬라브 옥상 처마에 거꾸로 붙어 꿈쩍도 안했다. 항상 그 자리였다. 일몰이 지나 어스름이 밀려오면 거미는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서등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 매미, 날벌레를 노렸다. 녀석은 확실히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의 독서시간은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였다..

녀석이 거미줄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빗줄기가 줄금거렸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치고 강수량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원형 거미줄을 지탱하는 슬라브 처마와 방벽의 연결줄을 덧붙였다. 녀석이 보강작업을 마치고 처마아래 웅크렸다. 빗줄기가 거세게 퍼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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