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후투티를 다시 만나다 - 3

대빈창 2023. 7. 19. 07:00

 

아무리 무딘 이라도 한반도를 물구렁텅이로 만든 계묘년癸卯年 장마를 견디며 기후 재난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니 한반도 기후는 이제 온대가 아닌 아열대가 분명해졌다. 장마가 아닌 우기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비가 귀한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를 물폭탄이 공습했다. 비가 주춤거리는 틈에 저녁 산책에 나섰다.

섬 중앙에 솟은 해발 146m의 봉구산은 해변까지 자락을 드리웠다. 짧은 골짜기를 치내려온 빗물이 시멘트 구조물 노깡으로 세차게 쏟아졌다. 갯벌이 크게 파여 쓸려나갔다. 빗물을 머금은 산은 몇날며칠 담수를 바다로 흘려보낼 것이다. 갈매기 수십 마리가 담수에서 목을 축이고 깃을 다듬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새들은 인간보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대책을 강구할 수 있을까. 본능적으로 살길을 찾아 힘겨운 날개짓을 할 수밖에. 물이 빠지는 갯벌에서 저어새 일곱 마리가 나의 산책 방향을 따라 일렬로 서서, 갯벌을 부리로 휘젓고 있었다. 해가 긴 계절이라 일몰까지 아직 시간반이나 남았다.

해변 솔숲을 빠져나와 반환점 바위벼랑을 보며 잰걸음을 옮겼다. 그때 10-15여m 앞의 후투티 한 마리가 눈에 뜨였다. 녀석은 내가 가는 방향으로 나를 안내하듯이 거리를 유지하며 앞서 갔다. 낮게 날아 저만치에서 땅바닥을 부리로 연신 쪼아댔다. 바위벼랑을 손으로 터치하고 뒤돌아서자 녀석도 다시 오던 방향으로 뒤돌아서 나를 앞서갔다. 녀석은 여전히 깝죽거리며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나를 안내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만났던 지점에 이르자 후투티는 제방을 버리고 솔숲으로 몸을 숨겼다. 녀석은 알이나 새끼를 보호하려고 나의 시선을 일부러 끌었는지 모르겠다. 많은 새들은 산란 장소에 접근하는 사람의 시선을 돌리려고 날개깃이나 다리가 부러진 것처럼 할리우드 액션을 취했다. 알이나 새끼를 위험에서 구하려는 의태 행동이다.

생태에 관한 사유가 아닌 세심한 관찰을 담은 생태 수필집 『후투티를 기다리며』를 잡고나서 주문도의 후투티가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만남은 2016. 7. 느리 선창의 토란밭이었다. 두 번째는 2019. 4. 대빈창 해변 모래밭이었고, 세 번째가 2020. 10. 봉구산 옛길 전선줄에 앉은 후투티였다. 네 번째 만남에서 녀석의 이미지를 가장 선명하게 잡을 수 있었다. 후투티야! 고맙다. 새끼들 잘 키워라. 내년 여름에 다시 찾아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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