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하지夏至의 감나무

대빈창 2023. 6. 21. 07:00

이미지는 2023년 계묘년癸卯年 우리집 텃밭가의 감나무입니다. 바야흐로 절기는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드는 열 번째 하지夏至입니다. 하지는 연중 낮이 가장 긴 날로 낮이 긴만큼 밤도 가장 짧은 날입니다. 옛부터 하짓날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했습니다. 어제 점심 무렵부터 줄금거리더니 해가 떨어지고, 제법 빗줄기가 굵어졌습니다. 오늘 하지 아침 7시까지 서해의 작은 외딴섬 주문도의 강수량은 22mm가 쏟아졌습니다. 이제 비는 거의 다 내린 것 같습니다.

우리집 감나무는 두 그루입니다. 뒤울안 수돗가의 감나무는 텃밭 일을 마치고 발을 씻는 어머니께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사시사철 새들이 날아와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녀석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직박구리, 산비둘기, 참새, 멧새, 노랑턱멧새, 박새. 콩새, 곤줄박이······.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저 새는 별스럽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구나”

 

어머니께 안부 인사를 전하는 새는 휘파람새였습니다. 모든 사물에 인성人性을 부여하는 당신의 귀에는 휘파람새의 울음이, 인사 소리로 들리시는 모양입니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감나무를 칠절七絶이라, 가까이 하고 아꼈습니다. 오래 살고, 좋은 그늘을 만들며, 새가 집을 짓지 않고, 벌레가 없으며,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가 먹음직스러우며, 잎이 커 글씨를 쓸 수 있음을 이릅니다. 우리집 텃밭가의 감나무는 일곱 가지 중에서 단 한 가지나마, 새가 집을 짓기는커녕 찾아오지도 않았습니다. 감나무는 올해 스스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었습니다. 새들도 병든 감나무를 피했습니다.

텃밭가 감나무는 우리집 전 주인이 아랫집 할머니 마당가의 어린 나무를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나이는 스무 살 전후가 되었습니다. 텃밭의 가장자리 땅을 파자, 커다란 암반이 나타났습니다. 전 주인은 무리하게 나무를 그 위에 심었다고 합니다. 불쌍한 감나무는 제대로 뿌리를 뻗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풍이 서해 중심을 따라 곧장 올라 온 어느 해 여름, 감나무가 크게 흔들리며 둥치에 흙탕물이 흥건히 괴었습니다. 그래도 녀석은 이듬해 잎을 틔웠습니다. 바람이 심한 날이면 감나무는 둥치까지 흔들렸습니다.

두해 걸러 고작 열 개 미만의 열매를 매달지만, 힘에 겨운 지 그것마져 일찌감치 떨구었습니다. 하지만 잎사귀는 매년 꿋꿋하게 피어 올렸습니다. 올해는 그마저 힘에 부치는지 둥치에서 갈라진 하나의 줄기에 통째로 잎을 달지 못했습니다. 감나무는 궁여지책으로 반신불수의 삶을 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어머니가 쓸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감나무는 이제 죽으려나보다, 잎도 올리지 못하는 구나”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맹꽁이의 아지트  (0) 2023.07.04
뒷집 새끼 고양이 - 39  (0) 2023.07.03
뒷집 새끼 고양이 - 38  (1) 2023.06.07
고라니는 쓸개가 없다 - 4  (0) 2023.06.01
대빈창 들녘의 바람인형  (0) 202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