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이미지는 노순이가 새끼 두 마리에게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이대자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의 모성본능으로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노순이가 열배 째 새끼를 낳은 지 스무다섯 날이 되었습니다. 세 마리를 낳았는데, 털빛이 온통 흰 놈과 검은 바탕에 흰 빛 얼룩이, 그리고 어미를 닮은 노란빛이었습니다. 노란빛 새끼가 일찍 어미 곁을 떠났습니다.
노랑이는 그동안 자신만이 아는 비밀장소에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감나무집 고구마밭 넝쿨 속에, 허름한 마당 창고의 한켠 구석에, 앞산 소나무둥치에 버려진 가빠 뭉텅이 속에······. 새끼를 혼자 낳고 하루이틀이 지나 어미는 배가 고파 집에 들어왔습니다. 뒷집 형과 형수는 배를 채우고, 새끼에게 돌아가는 노순이의 뒤를 밟아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본채에 딸린 부속건물 광에 골판지 박스에 옷을 깔아 어미와 새끼의 보금자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노순이는 열배 째 새끼를 집에서 가깝고 안전한 곳에서 낳았습니다. 부속건물 광과 저온저장고 사이의 폭이 좁고 길쭉한 공간에 지붕을 씌우고 허드레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로 활용했습니다. 선반에 쌓인 그물뭉치 틈새가 노순이의 해산실이었습니다. 새끼를 낳은 지 열흘 만에 노순이가 우리집에 나타나 뒤울안의 닫힌 부엌 샛문 앞에 앉아 졸라댔습니다. 어머니가 먹던 말린 망둥어찜 한 마리를 던져주었습니다. 노순이는 맛있다고 앙! 앙! 거리며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새끼들이 못 미더운지 급히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노순이는 작년 가을 낳은 아홉 배 째 네 마리에게 젖을 물리지 않았습니다. 형수가 애를 태우며 젖병으로 우유를 먹였지만 새끼들은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나는 가엾게 죽은 새끼 네 마리를 봉구산 아름드리 밤나무 둥치에 묻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못한 것은 도둑고양이와 싸움에서 입은 깊은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노순이는 젖이 말라붙었습니다.
어머니와 형수는 흰 놈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동네에서 흰 고양이를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어미가 새끼 두 마리를 건강하게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노순이가 저녁을 먹으려는데 현관문 미닫이 틈새에 머리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머니가 말을 붙였습니다.
“노순이 말 왔구나”
“야~~옹! 야~~옹!”
“노순이는 한결같이 말 대적을 하는구나”
어머니가 먹다남은 말린 망둥어찜을 던져 주었습니다. 노순이는 맛있다는 뜻인지, 고맙다는 의미인지 응-- 응-- 거리며 시원치않은 이빨로 망둥어 대가리를 씹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애를 썼습니다.
p. s 지난 샌드위치 연휴동안 집에 손님이 몰려들자, 노순이는 새끼들을 피신시켰다. 하필이면 우리집 뒤울안에 쌓아놓은 땔감용 나뭇단 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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