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대빈창 들녘의 바람인형

대빈창 2023. 5. 22. 07:00

 

바야흐로 24절기節氣 가운데 여덟 번째 소만小滿입니다.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듭니다. 옛날 손모를 내던 시절은 모의 성장기간이 45-50일이 걸려 모내기를 준비했으나, 요즘의 부직포 모판은 40일 이내에 모가 자라 모내기가 시작됩니다. 1년 중 가장 바쁜 계절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챙겨 대빈창 들녘으로 나섰습니다. 어제 아침산책에서 풍경을 처음 만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내심 마음먹었지만 거짓말처럼 장면이 사라졌습니다. 아침 해가 마니산 위로 떠올라 석모도 해명산 위로 성큼 다가섰습니다. 나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농로를 벗어나자 못자리 주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중국제인데 값이 비싸더라고. 둘째가 인터넷으로 산거야.”

 

논 주인은 해가 떨어지면 전기를 넣고, 날이 밝으면 스위치를 내렸습니다. 위 이미지는 대빈창 들녘 못자리에서 불침번을 서는 바람인형입니다. 1월(January)은 야누스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습니다. 야누스Janus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문을 지키는 신으로, 앞뒤가 다른 두 얼굴을 가졌습니다. 바람인형은 야누스였습니다. 다만 앞뒤 얼굴이 같았습니다.

바람인형은 흰뺨검둥오리가 못자리에 해꼬지를 못하게 밤을 새워 지켰습니다. 못자리와 모를 내는 시기, 농부들은 흰뺨검둥오리들로 속을 썩입니다. 모판의 부직포를 벗기면서 못자리를 빙 둘러 폐그물로 울타리를 두릅니다. 그것도 모자라 길게 늘어선 모판을 그물로 뒤집어씌웁니다. 오리들이 모판 흙속에 묻힌 볍씨를 탐하면서 못자리를 헤쳐 놓기 일쑤입니다.

섬 농부들은 모내기를 마치고 논에 물을 깊게 잡을 수 없습니다. 수영장으로 착각한 오리들이 활주로에 내려앉는 비행기처럼, 워터파크 미끄럼을 타는 아이들처럼 공습하기 때문입니다. 간신히 모내기를 마친 어린모가 오리들의 물갈퀴 질에 뽑혀 물 위에 둥둥 떠다녔습니다.

농부들은 얄미운 흰뺨검둥오리들만 눈에 띄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녀석들을 붙잡아 뺨이 창백해지도록 싸대기를 후려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마! 흰뺨검둥오리들은 그래서 양 뺨이 하얗게 질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도회지의 바람인형은 아울렛이나 유통 상가 개장․세일 이벤트에서 지나는 행인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이 임무입니다. 농촌의 바람인형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어두운 밤중에 홀로 흰뺨검둥오리들의 횡포로부터 못자리를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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