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고라니는 쓸개가 없다 - 4

대빈창 2023. 6. 1. 07:00

 

내가 사는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뜨이는 야생동물이 고라니입니다. 고라니는 우제목 사슴과로 몸집이 노루보다 약간 작습니다. 노루와 고라니의 다른 점은 노루의 수컷은 뿔이 있지만 고라니 수컷은 큰 송곳니가 입 밖으로 삐죽 나왔습니다. 고라니 울음은 뼛속까지 울리는 극한의 고통을 나타내는 데시벨입니다.

섬에서 처음 들은 단말마에,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덫이나 올가미에 걸려 죽어가는 고라니였습니다. 무지가 빚어 낸 착각이었습니다. 녀석의 울음은 자기 영역을 침범한 다른 고라니를 쫓아내려는 경고음, 암컷 고라니를 향한 구애 세레나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위협 소리라고 합니다. 산책을 나설 때마다 대여섯 마리가 눈에 띄는 고라니는 믿을 수 없게, IUCN(국제자연보전연맹)의 적색목록에서 멸종위기 취약종입니다.

전세계적 멸종위기동물 고라니의 90%가 한국에서 서식합니다. 한반도의 자연환경이 고라니에게 지상낙원인 셈입니다. 이 땅은 녀석들에게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호랑이․늑대와 같은 상위 포식자가 없고, 도시를 벗어나면 녀석들에게 먹이가 풍부한 산지가 널려있습니다. 이 땅의 개체수는 2010년 이후로 1㎢당 8마리로 70만 마리 이상이라고 합니다. [나무위키에서 발췌]

위 이미지는 며칠 전 아침 산책에서 만난 고라니입니다. 물때는 조금이었습니다. 고라니 한 마리가 엉뚱하게 백사장에서 어슬렁거렸습니다. 초식동물 고라니가 풀을 뜯지 않고 모래밭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기이한 풍경에 줌인으로 녀석을 잡았습니다. 소심하고 겁 많은 고라니가 놀라지 않게 발소리를 죽이며 접근합니다. 다행스럽게 녀석은 엉덩이를 내 쪽을 향한 채 앞을 향해 걸으며 땅바닥에 코를 들이댔습니다.

녀석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프리카 남서부의 칼라하리 사막은 수천 만년동안 바위가 바람과 빗물에 깎이고, 해안에서 날려 온 모래가 쌓여 형성되었습니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력의 원천은 칼라하리사막 밑의 소금 때문입니다. 3억년전 바다가 지각변동으로 위로 솟구치면서 호수가 형성되었고, 갇힌 물이 증발하면서 소금이 만들어졌습니다. 소금이 품고 있는 다양한 미네랄이 척박한 사막에서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원천입니다.

바닷물에 밀려 온 부유물이 모래사장에 길게 이어졌습니다. 밤새 바닷물이 가장 많이 들어 온 지점입니다. 조금이라 점심 무렵이 낮물 만조입니다. 고라니는 백사장의 길게 이어진 부유물을 따라가며 연신 코를 모래바닥에 대었습니다. 제 눈에는 녀석이 소금을 섭취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수많은 흰나비가 비 온 뒤 말라가는 웅덩이 주변의 흙을 하얗게 덮었습니다. 흰나비처럼 고라니도 소금을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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