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복수초가 깨어나다.

대빈창 2023. 4. 4. 05:13

 

우리집 뒤울안 화계花階의 복수초가 깨어났습니다. 작년 늦봄 화분가득 옮겨 온 복수초를 포기 나누어 화계에 심었습니다.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지 15년 만에 이룬 경사입니다. 저는 사진으로 보았던 쌓인 눈은 뚫고 올라온 봄의 전령 노란꽃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른 봄 새순이 나와 눈 속에서 꽃이 피어 설연雪蓮이라고 불렀습니다. 제주도 한라산 해발 600m 지점의 북쪽 나무 우거진 숲속은 2월 하순이면 노란꽃을 피어 올렸습니다. 경기도 깊은 골짜기는 3월 중순에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이 피면서 눈과 얼음을 뚫고 올라와 둥근 구멍이 생겨 얼음새꽃, 눈색이꽃이란 부르기도 합니다. 강한 생명력으로 이름이 붙은 복수초(福壽草, Adonis amurensis)는 이른 봄산에 가장 먼저 꽃피어 월일초라 불리기도 합니다. 1-4월에 꽃이 피고, 꽃의 지름은 3-4cm로 원줄기 끝에 한 개씩 달립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꽃 백 가지 2』에서 발췌.

복수초는 스무날 전 흙거죽을 밀고 올라왔습니다. 어머니가 다섯 포기로 나누어 화계 위 계단에 두 포기, 수선화 무리 앞에 세 포기를 묻었습니다. 그중 네 포기가 올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복수초의 노란 꽃을 기다리며 저는 아침 산책을 나설 때마다 화계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복수초는 가느다란 줄기에 양치식물 같은 잎만 매달았습니다. 오히려 무리지은 수선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삶터를 꾸미면서 집집마다 할머니들이 작은 화단에 온갖 꽃을 가꾸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웃섬 볼음도에 출장 갔다가 금강초롱 한 포기를 얻었습니다. 복수초도 탐을 냈지만 할머니는 매몰차게 거절하셨습니다. 금강초롱은 몇해 우리집 화계에 꽃을 피었지만 시나브로 사라졌습니다. 돌아가신 교동도에서 시집오신 방이 할머니께 천남성 세 포기를 얻었습니다. 꽃들은 북향을 바라보는 우리 집 화계에 뿌리내리기를 여간 곤혹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강하게만 보이던 천남성도 서너 해가 흐른 뒤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주문도와 마주보는 아차도의 빈집 현관문 앞 화분에 심겨진 복수초가 꽃을 피었습니다. 주인을 만날 수 없어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봉구지산을 아무리 싸돌아다녀도 복수초는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작년 봄, 나는 아끼는 후배에게 강화 5일장 풍물시장에서 복수초 두서너 포기를 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후배 왈 “우리 집 화단의 복수초가 얼마나 잘 퍼지는지 몰라요.” 화분 가득 심겨진 복수초는 치렁치렁한 머릿결같은 줄기가 벌써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복수초는 서해의 작은 외딴섬 봉구산아래 우리집 뒤울안 화계에 옮겨졌습니다. 복수초가 새 터에 뿌리 내리느라 모든 힘을 쏟아 부었는지, 첫 해 봄은 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내년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추운 계절, 우리집 화계花階의 복수초가 가장 이른 봄소식을 알리기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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