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 정오正午가 조금 지난 시각, 몇 년만이었을까. 나는 녀석을 만났다. 점심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빈창 사거리에서 봉구산으로 향하는 오른쪽 농로로 접어들었다. 야산아래 외딴집을 지나는데 무엇인가 알지 못할 느낌이 나의 시선을 땅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그랬다. 콘크리트 바닥에 배를 붙인 녀석이 꼼짝 않고 내가 지나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놈은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몸의 피를 덥히고 있었을까.
도마뱀은 짧은 동강을 나타내는 ‘도막’에 뱀을 붙여서 만든 단어다. 분류학적으로 도마뱀(Smooth skink)과 뱀의 구분은 두개골의 모양과 눈꺼풀을 움직일 수 있는 여부로 판단한다. 뱀은 아래턱이 붙어 있지 않아 큰 먹이를 물 수 있지만, 도마뱀은 턱이 빠지지 않아 입 크기에 맞는 먹이만 먹을 수 있다. 뱀은 눈꺼풀이 없는 반면 도마뱀은 움직일 수 있는 눈꺼풀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도마뱀은 총 6종으로 도마뱀부치과와 도마뱀과, 장지뱀과로 나뉜다. 도마뱀은 위험에 빠지면 꼬리를 잘라버리고 줄행랑을 놓는다. 스스로 신체의 일부분을 떼어버리는 행동을 ‘자절自切 현상’이라고 한다.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는 잘라낼 부위가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유사시 척수 반사에 의한 일종의 신체 반응과정이다. 도마뱀 꼬리에는 꼬리뼈가 느슨히 이어진 ‘탈리절’ 부위가 여러 개 있다. 이 자리의 꼬리가 잘려 나가면 ‘꼬리조임근’이 재빨리 꼬리 동맥을 수축시켜 출혈을 최소화한다.
도마뱀의 꼬리는 지방과 단백질 등으로 구성되었다. 유사시에 대비하여 에너지를 저장하고, 먹이 수급이 원활치 않은 위급상황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꼬리를 끊는다는 것은 위급시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도시락’을 버린다는 의미였다. 잘라버린 꼬리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몸의 에너지 대부분을 다 쏟아내야 한다. 〈한국일보 2017. 11. 25 〔아하! 생태!〕 도마뱀 ‘꼬리 자르기’ 말처럼 쉽지 않아요〉에서 발췌
어릴 적 도마뱀은 흔하게 눈에 뜨였다. 짓궂은 동무들은 도마뱀 새끼를 잡아 성냥갑에 넣고 다니며 여학생들을 놀래 켰다. 해안가나 강가의 사구에서 주로 발견되는 표범장지뱀은 멸종위기야생생물Ⅱ급이다. 위 이미지는 북도마뱀처럼 보였다. 파충류는 알을 낳지만 북도마뱀은 우리나라 도마뱀 중 유일하게 새끼를 낳는다. 주로 강원도 산간지역에 산다는데. 나의 무지가 빚어 낸 착각일까. 어쩌면 도마뱀 새끼일지 모르겠다.
녀석은 내가 스마트폰을 가까이 들이대고 10컷 정도의 사진을 찍기까지 미동도 안했다. 1-2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사람의 발길에 채이거나, 지나치는 차량이 염려되었다. 검지로 녀석의 등허리를 살짝 건드렸다. 도마뱀 특유의 몸을 좌우로 요란하게 흔들며 녀석이 재빠르게 길 건너 마른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도대체 내가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세월은 얼마나 흐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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