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는 날이 풀려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트는 우수雨水를 지나,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벌레들이 활동을 시작한다는 경칩驚蟄이 사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에도 여지없이 2박3일의 농기계수리가 지난 주에 있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모퉁이돌 선교원 훈련원의 운동장입니다. 주문도의 옛 서도 초등학교 자리입니다. 트랙터, 경운기, 이앙기, 관리기, 예초기, 분무기, 양수기, 엔진톱, 트레일러, 오토바이까지 나래비를 섰습니다. 영농철이 다가오면서 쇠소(鐵牛)들이 몸을 푸는 현장입니다.
지지난 주에 안타까운 사고가 터졌습니다. 이장의 웅~ ~ 웅 거리는 마을방송 소리에 덧창문을 열었습니다. 방송을 들으시는 주민들은 진화 도구를 가지고 연못골로 급히 나오라는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산불이 났습니다. 쇠갈퀴를 적재함에 싣고 달려갔습니다. 섬의 모든 주민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불이 난 곳은 연못골의 논배미와 몇 필지의 밭과 이어진 작은 동산입니다. 다행히 호두 과원이 봉구산과 동산을 가르지르고 있었습니다. 사람 손이 미치지 않은 산은 초피나무가 울창해서 진화작업이 더뎠습니다.
주문도 119소방대 물차가 도착하면서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와 2-3m 거리에서 솔가지로 잔불을 정리하던 두 분의 마을 형수가 새된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악--사-- 사-- 람” 그네들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마네킹으로 보이는 물체가 무릎을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세로 누웠습니다. 즉시 한 사람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매년 이맘 때, 봉구산자락 밭의 영농부산물 고춧대와 깻대를 소각하는 할머니입니다. 일생을 밭에서 사시면서, 몸에 밴 할머니의 행위는 산불지킴이의 애를 태웠습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조현병을 앓는 아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경운기․관리기 한 대 없는 노인네는 호미 하나로 너댓 필지의 밭농사를 지었습니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할머니는 겨우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들과 집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습니다. 할머니는 날이 풀리면 찬바람이 날 때까지 날이 궂지않는 한, 밭에서 종일 일했습니다. 그 넓은 밭을 혼자서 일구고 고추와 들깨, 고구마를 부쳤습니다. 그날은 세찬 바람으로 강화도와 섬을 오가는 객선이 결항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심하게 귀를 잡수셨습니다.
바람소리를 듣지 못하는 할머니는 몸이 시키는 대로 연못골 밭의 마른 풀을 태웠습니다. 불티가 산으로 옮겨 붙자 당황한 할머니는 신발까지 벗어던진 채 동산으로 뛰어올라 갔겠지요. 신발 두짝이 지멋대로 밭고랑에 뉘어져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맞바람을 맞는 방향에 쓰러졌습니다. 얼마나 경황이 없었으면 연기를 마시며 홀로 불길을 잡으려 애쓰셨을까요. 연못골은 주문도에서 가장 외진 곳입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산불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감나무 집과 뒷집 형은 트랙터 적재함에 가축퇴비를 실었습니다. 봄이 발치까지 다가왔습니다.
“형님들 힘들지 않으세요?"
“이제, 일 밖에 안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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