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이었다. 한낮 무더위를 피해 푸른 여명이 터오는 것을 보며 텃밭의 김매기를 마쳤다. 아침 밥상을 차리는데 뒤울안에서 노순이의 애가 끊는 울음과 새끼의 칭얼거림이 들려왔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양파․마늘․쪽파를 그물망에 넣어 말리려 뒤울안으로 돌아섰다. 노순이가 새끼 두 마리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봉구산 등산로로 연결되는 옛길 경사면의 화계와 우리집 뒷벽의 길고 좁은 공간이 뒤울안이다. 수돗가와 보일러실이 양 모서리에 자리 잡았다. 겨울 아궁이에 군불을 지필 나뭇단과 평상이 벽에 기댔다. 평상 위에 골판지 박스가 창턱 아래까지 쌓였다. 창문에 화계의 꽃과 나무가 얼비치었다. 박스 위에서 세 모녀가 엉킨 채 잠들었다. 아마! 새끼들이 높은 곳에 올라서지 못해 어미는 속이 상했는지 모르겠다.
노순이는 벌써 네 번째 새끼들을 데리고 우리집에 왔다. 내일이 주말이라 낯선 식구들이 들이 닥칠 것을 미리 알고, 새끼들을 피신시킨 것일까. 어머니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짐승들 하는 짓이 웃기는구나. 나는 이해가 안 되는구나.”
“새끼를 보러 하루에도 몇 번씩 오시니까. 노순이가 아예 새끼들을 데리고 온 거예요.”
뒷집 형수가 맞장구를 쳤다. 내가 생각하기에 노순이는 새끼들에게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주인이 집을 비우면 너희들은 이 집으로 와야 한다. 그래야 굶지 않고, 잠자리도 해결할 수 있다.
닷새 전 읍내에서 동물병원 수의사가 섬에 들어왔다. 고맙게도 정부지원 섬마을 고양이중성화수술 사업이었다. 형수는 고추밭에 나가면서 노순이를 나에게 맡겼다. 포획틀에 갇힌 어미와 새끼 두 마리가 나의 차에 실렸다. 수의사에게 새끼 성별을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모두 암놈이었다. 나는 흰순이와 얼룩이로 이름을 지었다. 노순이는 이제 노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흰순이 눈두덩이의 작은 점이 눈에 띄었다. 녀석을 붙잡아 힘들게 점을 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꼼지락거렸다. 진드기였다. 풀밭을 쏘다닌 어미에게서 젖을 먹다 옮겨 붙었을 것이다. 수의사는 수술받은 고양이는 사흘 동안 포획틀에 가둬놓아야 한다고 했다. 수술 부위가 아무는 시간일 것이다. 틀에 갇힌 노순이가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나는 새끼 두 놈을 안아다 어미와 상면시켰다. 뒷집 형수는 흰순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집에서 기를 것이라고 한다. 얼룩이가 인정 많은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좁은 틀에 갇힌 노순이가 안쓰러워 광에 새끼와 함께 풀어놓았다. 광에서 해방된 노순이가 다시 새끼들을 데리고 우리집에 왔다. 어미와 새끼들은 세상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기 오고 싶어서 어젯밤에 잠도 자지 못했나보다”
p. s 다 자란 얼룩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었다. 녀석은 눈을 뜬 채로 골판지 박스 위에 기어가는 자세로 죽어있었다. 밤에 뒷다리가 박스 틈새에 끼어 애를 쓰다 기력이 다했는지 모르겠다. 봉구산 아름드리 소나무 둥치에 얼룩이를 묻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투티를 다시 만나다 - 3 (0) | 2023.07.19 |
---|---|
맹꽁이의 아지트 (0) | 2023.07.04 |
하지夏至의 감나무 (0) | 2023.06.21 |
뒷집 새끼 고양이 - 38 (1) | 2023.06.07 |
고라니는 쓸개가 없다 - 4 (0) | 2023.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