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10

뒷집 새끼 고양이 -36

때 아닌 가을장마였다. 퍼붓던 비가 잠시 주춤한 이른 아침, 이틀 만에 산책에 나섰다. 옛길에 접어들기 전 뒷집 고양이 새끼들이 궁금했다. 아! 박스 안 두 마리의 몸이 뻣뻣했다. 새끼들이 세상의 빛을 본 지 스물다섯 날 째였다. 녀석들은 채 피어나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 낮게 내려앉은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고, 나의 마음은 우중충했다. 노순이가 낳은 아홉 배 째 새끼는 얼룩이와 노란빛 세 마리 모두 네 마리였다. 뒷집 형이 며칠 째 보이지 않던 노순이가 마당 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녀석이 배가 고파 할 수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형이 새끼들을 품에 안고 왔다. 유아방은 본채에 이어진 보일러가 앉은 부속건물 봉당의 골판지 박스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았다. 노순이는 하루나 이틀 전에 몸을 풀었을 ..

뒷집 새끼 고양이 - 35

재순이가 시체놀이를 하듯 자기집 뒤울안에 누워있었다. 산책에서 돌아오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놈은 패잔병 몰골이었다. 볼따구니의 살점이 너덜거릴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라이벌의 싸움은 죽기일보 직전까지 갔다. 놈의 으르렁거리는 협박소리는 귀기가 서렸다. 뒤울안에서 아기가 힘겹게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놈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밝히고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녀석들은 우리집 뒤울안, 해변으로 향하는 언덕, 내방 창문 아래, 봉구산자락 오솔길의 어둠 속에서 서로 마주보며 으르렁거렸다. 재순이의 상대는 ‘봉구산 폭군’ 검은고양이였다. 폭군 길냥이가 나를 보고 줄행랑을 놓자 재순이가 그 뒤를 따라갔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녀석들이 사납게 싸우는 소리가..

배가 뭍으로 올라오다.

1항차 삼보12호가 선창에 접안하고 있었다. 물량장에 녹슨 닻 2개가 뉘였고, 해양크레인에 끌려올라 온 선외기가 땅바닥에 내려졌다. 바닷물이 크게 부풀어 올랐고, 물때는 참이었다. 바다건너 늘어 선 섬은 관음도량 보문사로 이름 난 석모도다.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부잔교 끝머리에 두서너 대의 소형어선이 보였다. 곧 물량장으로 끌려올라 올 배들이었다. 하늘의 흰 구름떼가 빠른 속도로 쓸려갔다. 폭풍전야였다. 9. 3. 오전 10시경의 주문도 느리항 전경이다. 제11호 태풍 힌남노(HINNAMNOR)는 국립보호구역 이름으로 라오스에서 제출했다. 공포에 질린 언론이 떠들어대는 초강력 태풍 힌남노의 이동에 사람들은 눈과 귀를 모았다. 힌남노는 동중국해의 수온이 예년보다 2℃ 높은 30℃의 해역을 통과하며 수증기를..

지척咫尺의 원수가 천리千里의 벗보다 낫다.

속담에 ‘지척咫尺의 원수가 천리千里의 벗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으로 지내다 보면 먼 곳에 있는 일가보다 더 친하게 되어 서로 도우며 살게 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도 같은 의미입니다. 위 이미지는 아흔 줄의 두 이웃사촌이 보행보조기를 앞세워 언덕을 오르고 있습니다. 텃밭의 호박 줄기가 무성합니다. 어머니는 매년 호박모를 텃밭에 내려서는 경사면에 두 포기 묻었습니다. 뒷집 형수가 싹을 틔운 호박은 열매를 달지 못하고 가공할 정도로 줄기와 잎만 뻗었습니다. 형수는 작년 실한 호박을 끝없이 매다는 놈의 씨앗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우스에 싹을 틔워 이웃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F1 이었습니다. 몇 해 전 아랫집 할머니는 텃밭의 옥수수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

대빈창 바위벼랑에 손을 대다.

위 이미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할 때마다 손바닥으로 한 번 두드리고 뒤돌아서는 대빈창 바위 벼랑입니다. 해변의 물이 만조입니다. 물때는 열물이었고 시간은 아침 7시를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바위 벼랑은 산책 반환점입니다. 수평선과 바위 벼랑이 만나는 지점에 직박구리 한 마리가 앉았습니다. 녀석은 머루가 익기도 전에 벼랑을 찾아왔습니다. 미리 자기의 먹을거리를 눈에 익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인가 대빈창 해변을 소개하며 바위 벼랑에 드리어진 넝쿨을 보고, 조선 15세기 문인화가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떠올렸습니다. 고사가 너럭바위에 엎드려 고적하게 물을 바라보는 그림입니다. 바위절벽과 잔잔한 바람에 너울거리는 넝쿨의 표현이 일품입니다. 대빈창 절벽의 넝쿨은..

바다를 여는 사람들

푸른 여명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다. 물때는 여섯 물이었다. 조개잡이에 나선 대빈창 주민 네 분이 모래밭에서 갯벌로 발을 옮겼다. 그때 경운기 한 대가 뒤따랐다. 그들은 운이 좋았다. 경운기 적재함에 올라탔다. 경운기는 노둣길을 따라 왼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멀리 무인도 분지도 구역에 들어설 것이다. 직선거리 1.5㎞의 갯벌을 걷는 일은 고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갯벌의 이동수단 경운기를 모는 분은 두세 명이었다. 주민들은 포터 또는 사륜오토바이를 끌고 물때에 맞춰 나왔다. 바위벼랑 나무테크 계단 공터에 주차하고 맨몸으로 갯벌에 들어갔다. 낡은 배낭이 등에 매달렸고, 손에 그레・호미가 쥐어졌다. 무릎장화를 신었다. 토시로 팔목을 묶었다. 챙이 긴 모자로 햇빛을 가렸다. 백합은 이매패류二枚貝類 연체동..

당랑거철螳螂拒轍

5년 전 앞발을 치켜 든 사마귀 앞에 얼어붙은 베짱이를 잡은 이미지를 올렸습니다. 그때 사마귀를 쫓아내고 베짱이를 구해주면서 맹자와 제나라 선왕의 ‘곡속장(穀觫章)의 이양역지(以羊易之)’ 고사故事를 떠올렸습니다. 수은주가 30℃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는 나날입니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얼굴에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뒤울안으로 통하는 부엌 샛문(방충망 문)을 열었습니다. 수돗가에서 매미의 날개가 무언가에 부딪히며 떨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명자나무 줄기와 가지 틈새를 들여다보니 사마귀가 낫을 닮은 앞발로 매미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매미는 달아나려 죽을힘을 다해 날개 짓을 하지만 허공에 바람만 일으키고 있을 뿐입니다. 5분여나 지속되던 매미의 날개 짓 소리가 잠잠해졌..

대빈창 해변의 품바

대빈창 해변과 해송 숲을 등지고 주차장에 간이 무대가 들어섰다. 자바라 텐트 무대 앞마당에 차광막으로 지붕을 씌웠다. 큰 북과 사람 키만한 스피커와 노래방 기기가 늘어섰다. 두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간이테이블이 텐트 그늘에 앉았다. 한켠의 음식조리실 현수막은 〈주문도 대빈창 해변 포차〉였다. 돼지껍데기, 무뼈닭발, 메밀야채전, 컵라면, 맥주, 소주······. 계산은 선불이고, 술과 음식은 셀프였다. 주차장 가의 무성한 보리수나무 아래 텐트 대여섯 개가 모여 있었다. 공연 팀의 텐트촌이었다. 시도때도 없이 흩날리는 장마철 빗줄기에 비닐로 지붕을 씌웠다. 탑차가 무대로 향하는 입구에 서있었다. 〈세월따라 노래따라 Live〉 그들의 공연 장면이 차벽을 도배했다. 품바 일행은 보름 전 점심 배로 살꾸지항에 닿..

뒷집 새끼 고양이 - 34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분양된 지 열흘이 지났다. 노순이는 여덟 배 째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다. 젓을 떼기 전에 한 마리가 죽었다. 암놈 한 마리는 느리 선창 민박집에서 먼저 데려갔다. 태어난 지 두 달 째 되는 날 수놈 세 마리가 모두 주인을 만났다. 한 마리는 봉구산너머 진말 농협 앞집으로, 두 마리는 서울로 먼 길을 떠났다. 뒷집 형이 봉고 트럭으로 세 마리를 진말로 데려다 주었다. 두 마리는 도시 고양이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들이 만난 새 주인이 반려묘를 진정으로 아끼는 인정많은 분들이면 좋겠다. 이미지는 혼자가 된 노순이가 다음날 아침 참새를 입에 물고 일곱 배 째 혼자 태어난 노랑이를 비껴 지나갔다. 노순이는 새 사냥의 명수였다. 참새, 박새, 콩새 심지어 덩치 큰 직박구리와 멧비둘..

뒷집 새끼 고양이 -33

위 이미지는 나에게 데자뷰였다. 2019. 8. 「뒷집 새끼 고양이 - 21」의 장면과 같았다. 새끼들이 태어난 지 한 달하고도 20여일이 지났었다. 노순이는 그때 네배 째 낳은 새끼들이 어느 정도 앞가림을 하자 우리집 뒤울안으로 이끌고 왔었다. 어미가 새끼의 목덜미를 무는 행동은 무리였다. 새끼들은 어미 말을 지상명령으로 여겼다. 녀석들에게 가파른 화계花階는 넘어지고 엎어지는 고난의 대장정이었을 것이다. 〈심장이 뛴다 38.5〉 촬영팀이 이틀 동안 북새통을 떨자 노순이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보일러를 앉힌 넓은 광을 포기하고 이사를 감행했다. 저온저장고의 출입통로로 쓰이는 길쭉한 틈새 공간이었다. 허드레 물품이 어지럽게 널린 비좁은 공간에서 새끼들은 장난질에 여념이 없었다. 산책을 나설 때마다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