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뒷집 새끼 고양이 - 35

대빈창 2022. 10. 4. 07:00

 

재순이가 시체놀이를 하듯 자기집 뒤울안에 누워있었다. 산책에서 돌아오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놈은 패잔병 몰골이었다. 볼따구니의 살점이 너덜거릴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라이벌의 싸움은 죽기일보 직전까지 갔다. 놈의 으르렁거리는 협박소리는 귀기가 서렸다. 뒤울안에서 아기가 힘겹게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놈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밝히고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녀석들은 우리집 뒤울안, 해변으로 향하는 언덕, 내방 창문 아래, 봉구산자락 오솔길의 어둠 속에서 서로 마주보며 으르렁거렸다. 재순이의 상대는 ‘봉구산 폭군’ 검은고양이였다. 폭군 길냥이가 나를 보고 줄행랑을 놓자 재순이가 그 뒤를 따라갔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녀석들이 사납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군의 위협하는 소리는 상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서려있었다.

 

“쥐도 못 잡으면서 쳐 먹기만 해”

 

뒷집 형이 재순이를 구박하는 소리였다. 내가 녀석에게 붙여 준 별명도 ‘미련한 놈’이었다. 재순이는 식탐이 강했다. 녀석이 어언 만 여덟 살이 되었다. 누이동생 노순이와 함께 배나무 줄기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은 것이 첫 만남이었다. 재순이는 사나운 강아지 콧잔등 아물 날 없듯이 항상 얼굴이 엉망이었다. 검은고양이와의 전투에서 얻은 훈장이었다. 나는 그래도 재순이가 대견했다. 섬의 고양이 세계에서 ‘봉구산 폭군’은 왕초였다. 놈은 시커먼 몸뚱이에 흰 반점이 서너 개 박혔고 덩치가 컸다. 폭군을 만나면 뒷걸음을 치거나 줄행랑을 놓던 재순이가 언제인가부터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맞장을 떴다. 재순이는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얼굴 살점이 뜯겨도, 눈덩이 살점이 덜렁거려도, 귀때기가 너덜거려도 재순이는 싸움을 겁내지 않았다. 녀석은 의연했다. 그리고 의리가 강했다. 팔년 간 녀석을 지켜 본 결론이었다.

 

“수놈은 다 자라면 집을 나가 아무 소용없어”

 

아랫집 할머니의 말씀이셨다. 그렇다. 사자, 호랑이, 표범 등 고양이과 동물들의 생존양식이었다. 재순이도 집을 나가 한 달이 지나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난 녀석은 우리집에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졸랐다. 아무튼 녀석은 의리 있는 고양이였다. 의 ~ ~ 리! 이제부터 ‘미련한 놈’보다 ‘의리 고양이’라고 불러줘야겠다.

재순이는 갈증이 나면 우리집 뒤울안 수돗가에서 목을 축이고 감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녀석은 항상 깔방석에 주저앉았다. 어머니가 부엌 샛문을 열고나서면 재순이는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치 주인을 알아보듯이. 글줄을 이어나가는 지금, 내방 창문아래에서 두 녀석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련한 놈이라고 구박받는 재순이가 자기집 식구들(노순이, 노랑이)를 폭군으로부터 지켜내고 있었다. 녀석도 이제 많이 늙었다. 상처뿐인 영광을 훈장처럼 달고, 덩치 큰 도둑고양이와 연일 전투를 벌이는 재순이가 믿음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