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壬寅年 벼농사 수확이 시작되었고 기러기가 날아왔다. 스무날 전 몇 필지의 중생종 진상을 수확한 논에 내려앉은 한 가족으로 보이는 여섯 마리가 첫 손님이었다. 열흘 전 본격적인 주문도 대빈창 들녘의 만생종 삼광・추청 벼베기가 시작되었다. 놈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새카맣게 다랑구지 들녘에 몰려들었다. 나는 기러기들이 대견했다. 녀석들은 논에 서있는 알곡에 절대 입을 대지 않았다. 콤바인이 수확하면서 논바닥에 흘린 벼알만 주워 먹었다.
이미지는 한 주일전 점심 산책으로 봉구산 자락을 벗어나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옛길에 올라섰을 때 인기척에 놀라 하늘로 떠오른 기러기떼였다. 올 해는 여는 해보다 많은 기러기가 날아왔다. 날이 갈수록 놈들의 수가 무섭게 불어났다. 벼를 벤 논에 내려앉은 기러기가 빈틈없이 들어차 러시아워의 지옥철같았다. 작년 녀석들은 논바닥의 벼알을 알뜰하게 주워 먹었고, 빈밭의 고구마 잔챙이들을 싹쓸이한 후 심지어 말라붙은 매운 고추까지 입에 대었다. 그만큼 녀석들의 먹을거리가 절대 부족했다. 기러기들은 부족한 식량난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
비경지정리 다랑구지 들판은 농로에서 가까운 논부터 차례로 벼베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들녘 가운데 논들만 벼가 서있었다. 산책로에서 녀석들이 점점 멀어지면서 인기척에 놀라 날아오르는 고단한 날개짓은 줄어들 것이다. 먼동이 터오면서 나는 아침 산책에 나섰다. 대빈창 해변 제방에 올라서자 멀리 바위벼랑 반환점 앞 갯벌에 기러기떼가 새카맣게 앉았다. 녀석들은 아침햇살이 퍼지면서 대빈창 들녘으로 날아들 것이다.
나는 가던 발길을 돌려 반대방향 제방을 탔다. 제방 끝은 마을 공동어장 구라탕으로 내려서는 길목이었다. 구라탕은 자연산 굴밭이다. 아침산책에서 대빈창 해변의 물때가 썰물로 갯벌이 드러나면 구라탕가는 제방을 타야겠다. 가뜩이나 부족한 식량으로 고달픈 기러기들의 갯벌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겨울 산책은 반환점 바위벼랑에 손을 대는 것보다 할머니들이 찬바람을 쐬며 굴을 채취하는 고단한 노동 현장에 동행하는 발걸음도 괜찮겠다. 마지막은 수묵화가 이호신의 「살아 있는 하늘」(『숲을 그리는 마음』,학고재, 1998)에서 만난 한 구절(260쪽)이다.
그리고 저 푸른 하늘을 마저 그리라면
나는 펄펄 날아오르는 새떼를 그릴 것이다.
보라!
저 장엄한 질서 속에서 철새의 나래짓은
정녕 살아 있는 하늘로 나부끼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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