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 앉으신 어머니가 4층 휴게실 옆 공간에서 옥상 정원의 낙엽 지는 나무에 하염없이 눈길을 주고 계셨다. 어머니가 왼쪽 고관절 부위 통증을 호소하시며 서있기도 힘들어하셨다. 나는 겁이 더럭 났다. 어머니는 육칠년 전 척추협착증과 오른쪽 고관절 큰 수술을 잘 이겨내셨다. 삼사년 전 폐렴으로 같은 병원에 입원하셨다. 별탈없이 지내오시던 어머니가 제 한 몸 가누기도 힘겨워하셨다. 정형외과를 찾아 X-ray를 찍으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서울 위성도시의 대학병원 의사 선생은 MRI를 권유했고, 퇴근도 미룬 채 판독결과를 기다리셨다. 다행스럽게 이상은 없었다.
섬에 들어가는 배는 끊어졌다. 시흥에 사시는 이모집으로 향했다. 몸이 불편한 자매의 회포는 동병상련의 아픔이었다. 다음날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에 도착하여 기력회복 링거를 맞추어드렸다. 차도가 없었고, 어머니는 걷기도 힘들어하셨다. 의원을 나서자 강화장날의 길거리는 말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나는 축 늘어진 어머니를 등에 업었다. 다시 한 시간 거리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자유로를 달리는데 바닷물에 쩐 하부가 녹슬은 자동차가 말을 듣지 않았다. 코로나 검사 두 시간만에 음성 판정으로 어머니의 입원이 확정되자 나는 차부터 수리센터에 맡겼다.
코로나 시국은 환자와 보호자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휴게실은 폐쇄되었고, 5인실 병실은 TV도 없었다. 커튼 가림막으로 같은 병실 식구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보호자는 환자침대 옆 간이 의자에서 불편함 잠을 청했고, 외부 출입도 금지되었다. 감옥아닌 감옥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학병원이라 보호자가 지하식당가에서 밥을 사먹는 것이 위안이었다. 이틀이 지나자 통증은 사라졌으나 어머니는 병원생활의 갑갑함에 치매 증상마저 보이셨다. 막내아들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퇴원을 서둘렀으나 병원의 진료는 정형외과에서 감염내과로 넘어갔다. 어머니의 지속되는 발열은 쯔즈가무시를 의심했다. 피검사 결과가 토요일 새벽에 나왔고, 우리 모자는 가퇴원으로 일요일 저녁 섬에 들어올 수 있었다.
병원에서 항구까지 작은 형이 어머니를 모셨다. 오랜만에 세 식구는 두부집에서 밥을 같이 먹었다. 병원 침대에서 전혀 기운을 못 쓰시던 어머니는 섬으로 돌아오자 정신도 맑아지셨고, 지팡이를 짚은 채 가벼운 거동을 하셨다. 어머니에게 병원의 진통제・항생제보다 섬의 맑은 공기와 시원한 물맛이 활력소였다. 김장을 마치자 추위를 재촉하는 가을비가 주말에 내렸다. 수리를 끝낸 차를 찾아야겠다.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으로 토끼띠 해다. 어머니께서 기운을 차리셔서 지팡이 없이 토끼처럼 뜀박질을 하셨으면 좋겠다. 병원생활동안 속이 타신 어머니가 뒤를 보지 못하셨다. 관장을 해드렸다. 오래 묵은 변이 쏟아졌고, 얼굴이 많이 펴지셨다. 어머니의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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