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그 많던 기러기들은 다 어디 갔을까

대빈창 2022. 12. 8. 07:30

 

나의 산책 코스는 알파벳 대문자 V자字 또는 빗살무늬토기의 바깥 면을 따라가는 형상입니다. 토기의 아가리에서 출발해 바깥 선을 따라 뾰족한 바닥에 닿으면 봉구산 자락의 고추밭입니다. 사람이 밭으로 일구기 전에는 봉구산에 내린 빗물이 한데 모여 바다로 쓸려나가는 계곡이었을 것입니다. 토기의 아가리 부분은 바다와 다랑구지 들녘을 경계 지은 제방입니다. 제방너머 푸른 바다를 볼음도와 아차도, 주문도 바우지가 삼각형으로 에워쌌습니다.

이미지의 다랑구지는 한 필지도 남김없이 가을갈이를 했습니다. 강화도․교동도․석모도 들녘은 커다란 비닐 물체가 시린 겨울 햇살을 튕겨내고 있었습니다. ‘볏짚 원형 곤초 사일리지’로 볏짚에 미생물 첨가제를 처리하여 비닐로 감싼 소사료입니다. 코로나 정국으로 인한 조사료 공급부족으로 소먹이로 팔려나가는 볏짚의 값이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서해의 작은 외딴섬 농부들은 볏짚을 팔아 가욋돈을 만질 기회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격으로 도선료 부담으로 어쩔 수 없이 볏짚을 논에 되돌려 주었습니다.

가을갈이는 토양 유기물 증가로 물리성이 좋아지고, 유효규산과 양분․수분 보유 능력을 증대시킵니다. 유기물이 많은 토양은 토양의 완충능력이 강해져 기상재해와 병해충으로부터 안정적입니다. 볏짚환원 효과는 많은 량의 퇴비를 시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섬의 농부들은 땅심을 높이려고 가을갈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릇입니다. 한두 푼이 아쉬운 사정은 누구나 매한가지였습니다. 다랑구지의 가을갈이는 애꿎게 기러기들에게 고난의 계절로 다가왔습니다.

중생종 벼를 베기 시작하면서 편대를 이루어 북녘 하늘에서 날아온 기러기들이 벼베기를 마친 필지마다 러시아워의 지옥철처럼 빼곡했습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가을갈이가 경쟁적으로 펼쳐지며, 기러기들이 말라가는 웅덩이의 송사리들처럼 내몰렸습니다. 제방논부터 시작된 논갈이가 간척지를 먹어들더니 연못골의 삿갓배미까지 깔끔하게 해치웠습니다. 기러기들이 주워 먹을 알곡이 땅속으로 묻혔습니다. 겨울비답지 않게 35㎜의 폭우가 밤새 쏟아져 빗물이 괸 낮은 배미로 기러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녀석들은 물에 둥둥 뜬 벼알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다음날 새벽부터 찬바람이 불면서 수은주가 곤두박질쳤습니다. 논물이 얼어붙자 기러기들은 봉구산자락의 고구마밭에 몰려들었습니다. 녀석들은 고구마 잔챙이로 배를 채우겠지요. 그마저 궁해지면 마른 고춧대에 매달린 쭈그러든 붉은 고추에 입을 댈 것입니다.

수확이 시작되고, 다랑구지 들녘의 푸른 하늘을 뒤덮었던 기러기 떼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동료들을 남겨 놓고 녀석들은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요. 동지도 보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녁산책에서 돌아오는 길, 짧은 겨울해가 벌써 어둑해졌습니다. 봉구산 자락 옛길로 들어서는데 저만치 고춧대를 뽑아쌓은 밭언저리에서 인기척을 느낀 녀석들이 곽 - - 곽 - - 거렸습니다. 나는 오던 길을 되돌아 들녘 중앙농로를 탔습니다. 허허벌판을 휩쓰는 바닷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습니다. 속이 허한 기러기들은 추위를 더 타겠지요. 애먼 날개짓으로 녀석들이 기운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형의 죽음 - 1  (0) 2023.01.09
임인년壬寅年 해넘이  (0) 2022.12.30
터너의 붓질  (0) 2022.12.01
기력이 떨어지셨다.  (0) 2022.11.14
대빈창 억새  (0) 202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