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壬寅年의 해가 저물어갑니다. 섣달 스무날이 지난 어느날 저녁 산책에서 잡은 대빈창 해변 이미지입니다. 바닷물은 만조입니다. 수평선 위에 엷은 구름띠가 드리웠고, 무인도 분지도는 역광을 받아 검은 음영을 드리웠습니다. 해가 바다로 발을 들이미는 순간입니다. 올 한해는 한마디로 단순소박한 삶의 나날이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부여받아 그런대로 잘 꾸며왔다고 여깁니다. 나의 노동은 고작 텃밭의 작물을 돌보거나 이웃집들의 고추건조 작업을 돕는 정도였습니다.
하루세번 한 시간 거리의 대빈창 해변 산책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비나 눈이 오는, 궂은 날은 할 수없이 스쿼트 머신으로 30분정도 몸을 움직였습니다. 3주에 한 번 읍내의 도서관에 둘러 책을 대여했습니다. 도서 대여기간이 3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니 대략 150여권의 책이 나의 손을 거쳐 갔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이런 단순한 삶이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에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 주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계묘년癸卯年에도 단순소박한 삶은 지속되겠지요. 이제 나는 시골에서 사시다 이름 석자 남기지 않으시고 저 세상으로 돌아가신 촌부들의 삶을 가장 존경합니다. 나의 어머니 같은 분들은 헝겊쪼가리, 비닐봉투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즉 그들의 삶은 탄소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 삶이셨습니다. 천문학적 액수의 기부금을 내며 열일하는 빌 게이츠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선한 자본주의’를 외치는 그는 뜻하지않게 가난한 이들을 기후재난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 빌 게이츠는 자가용비행기로 공중에서 350시간을 보내며 1600톤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했습니다.
지갑을 뒤적입니다. 두 카드가 눈에 뜁니다. 〈장기기증희망등록증〉 2009년 4월에 ‘가톨릭장기기증전국네트워크’에서 발급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가족 대부분이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 2019년 5월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센터’에서 발급했습니다. 제도가 만들어지고 곧장 어머니를 모시고 지역 국민건강보험에 찾아가 등록했습니다. 6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누이의 마지막 모습이 저의 발걸음을 재촉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환자실의 누이는 인공호흡기와 각종 호스가 온 몸을 감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울부짖으셨습니다. “ 내 딸이 왜 여기 누워있냐”
그때 저는 존엄있는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1월 중순 어머니는 대학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하셨습니다. 연세가 많이 드셔서 기운이 떨어지신 것으로 짐작했지만 돌이켜보니 쯔쯔가무시에 전염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어머니가 퇴원하시고 보건소 관계자가 전염병 감염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퇴원하면서 병원에서 조제한 약을 복용하신 후 어머니의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감염내과에서 처방한 약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어머니는 기운을 많이 회복하셨습니다.
백수로 1년을 보내며, 주위 분들의 나를 보는 눈에서 안쓰럽다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땅은 일중독사회였습니다. 시인 박남준은 수중에 관 값으로 300만원만 남기고 나머지 돈은 전부 기부를 합니다. 시인의 철학은 ‘돈을 안 쓰고 안 벌면 된다’입니다. 새해 계묘년의 삶도 여전히 책 속에 파묻혀 소일할 생각입니다. 그리 많지 않은 재산은 재단법인에 기부신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무 죄도 짓지 않았지만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겠습니다. 굶주리는 북녘의 어린이들, 하루도 그치지않는 분쟁 지역의 어린이들의 고통을 매만지겠습니다. 존경하는 선각자가 닦아놓은 길을 알고 있습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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