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는 때처럼 대빈창 해변 저녁 산책에 나섰다. 북유럽의 피요로드 해안처럼 볼음도의 실루엣이 바다로 길게 뻗어 나왔다. 소용돌이치는 검은 구름이 수평선으로 다가서는 일몰의 해를 집어삼켰다. 빠르게 흩어지는 구름 속에 중앙 상단의 낮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먹구름과 푸른 하늘이 만나는 지점에 무지개가 서렸다. 제주 바닷가의 용두암龍頭巖이 연상되었다.
자연주의 시인 다이앤 애커먼의 『나는 작은 우주를 가꾼다』를 잡다, 이 구절을 만났다. ‘폭풍우를 그린 영국 화가 터너는 자신을 돛대 위에 묶고 포효하는 폭풍우 속에 자신을 맡기면서 광분하고 용솟음치는 색깔을 몸으로 느꼈다.’(181-182쪽) 그렇다. 나의 뇌리에 떠오른 이미지는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해양 풍경화였다. 1842년 왕립 아카데미에 출품한 작품 〈눈보라: 하버 만의 증기선〉은 캔버스에 유채, 91.4x121.9㎝, 런던 데이트갤러리에 소장되었다.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는 오디세우스처럼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었다. 오디세우스가 몸을 묶은 것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세이렌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화가는 폭풍이 이는 날 바다의 분노를 직접 체험하려고 돛대에 몸을 묵는 ‘미친 짓’을 감행했다. 터너의 그림은 하늘과 바다가 뒤엉켜 세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증기선으로 보이는 물체가 중앙에 희미할 뿐이었다. 추상화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대였다. 비평가들은 힐난했다.
“이것도 그림이냐?”
“도대체 그들은 바다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한번 폭풍이 이는 바다 가운데 있어 보라지.”
화가가 말했다. 그는 폭풍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다를 그리면서 캔버스에 격렬한 카오스의 세계를 드러냈다. 고전과 현대의 분기점에 서있던 터너는 오랜 전통의 붕괴를 낭만적인 종말의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 『노성두 이주헌의 명화일기』(한길아트, 2006)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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