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이미지는 24절기 가운데 한로와 입동 사이에 드는 열여덟 번째 절기 상강霜降을 며칠 남긴 대빈창 억새이다. 상강은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고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아침 산책에서 물 빠진 갯벌에서 쉬고 있는 고단한 기러기들의 애먼 날갯짓이 미안해 발길을 돌려 반대방향 제방을 탔다. 제방 끝은 마을공동어장 구라탕으로 내려서는 길목이었다. 바람에 쓸려 온 모래가 쌓여 작은 둔덕을 이루었고 억새가 뿌리를 내렸다.
제방 끝은 월파벽 공사를 막 끝내 토목 자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포클레인이 빈 공터를 차지했고, 거푸집이 차곡차곡 쌓였다. 일을 끝내고 뭍으로 나간 인부들이 고마웠다. 그들은 억새 한 포기 건드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억새와 갈대를 혼동했다. 섬주민이 되기 전 나의 모습이었다. 가장 쉽게 구별하는 방법으로 억새는 산에서 자라고, 갈대는 물가에서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구분법은 아니다. 내가 사는 서해의 작은 외딴 섬은 묵정밭이 해가 갈수록 늘어났다. 그곳에 갈대와 억새가 사이좋게 이웃하여 자리잡았다.
갈대(Common reed)는 물가의 모래땅에 군집을 이루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마디가 있는 줄기는 속이 비었다. 키는 보통 3m 정도다. 땅속줄기로 뻗어나가 번식하며 마디에서 수염뿌리가 난다. 대나무와 비슷한데서 이름을 얻었다. 억새(Flame Grass)는 우리나라 전국 산야의 햇빛 잘 드는 곳에 무리를 이루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줄기는 마디가 있고 속이 비었다. 키는 보통 1-2m 정도다. 굵고 짧은 땅속줄기에서 빽빽하게 뭉쳐 무리를 이룬다.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꽃 색깔이다. 갈대는 갈색이고, 억새는 흰빛이다.
나의 어릴 적 이맘 때면, 강남으로 떠나려는 제비들이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는 지 마을 입구 전깃줄에 새까맣게 앉아 재잘거렸다. 그 많던 제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일교차가 커지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이슬이 펑하게 내렸다. 하루가 다르게 아침 기온이 뚝뚝 떨어졌다. 제비는 보이지 않았지만 겨울 철새 기러기는 예나 지금이나 북쪽하늘에서 편대를 지어 날아왔다. 노심초사 기러기를 기다리다 억새는 머리가 하얗게 새었는지 모르겠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시끄럽기는커녕 반갑기만 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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