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계묘년癸卯年 첫날 아침, 해가 강화도 마니산 산줄기 능선위로 떠올랐습니다. 일출시간 아침 8시에서 5분이 경과한 시점입니다. 나는 올해도 임인년壬寅年 첫날처럼 살꾸지 선창에서 해돋이를 맞이할 생각이었습니다. 2022년의 마지막 날, 점심을 먹고 습관이 된 오수에서 막 깨어났는데 손전화가 울렸습니다. 조카의 음성에 물기가 잔뜩 묻었습니다. 큰 형은 12. 31. 13:29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온화해서 막배가 출항했습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지방도는 오고가는 차량이 가득했습니다. 일몰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대처 사람들은 마지막 해넘이에 의미를 부여하며 서해의 섬 강화도로 몰려들었습니다.
고인은 그동안 치료받던 일산병원에서 사시던 김포시내 장례식장으로 모셔졌습니다. 형은 폐암으로 1년의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마저 못 채우고 8개월 만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수리공사중인 장례식장은 계단을 이용할 수 없었고, 한 대의 엘리베이터만 임시 운행되었습니다. 장례식장은 형수와 조카 남매, 그리고 조카며느리뿐이었습니다. 성당 신도 두세 분이 찬송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둠이 짙어지자 작은 형 부부가 오셨고 사촌형제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코로나의 영향 때문인 지 인천승화원의 순서가 지체되어 4일장으로 치르게 되었습니다. 밤이 이슥해지고 상주의 친구들이 몰려들면서 장례식장은 북적거렸습니다.
나는 위폐를 보고서 형의 영세명이 ‘바오로’인 것을 알았습니다. 고인의 영정이 내려다보는 바닥에 등을 누인 나의 기억은 리와인드되었습니다. 우리 형제는 3남1녀로 큰형과 나는 여덟 살 터울입니다. 큰형은 중학을 졸업하고 일찍 사회에 발을 디뎠습니다. 키가 왜소하고 성격이 모질지 못했던 형의 사회생활은 악전고투였습니다. 나의 기억으로 형은 한 공장에 1년 이상을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힘든 사회생활의 여파인지 형은 담배를 일찍 배웠고, 필터도 없는 싸구려 담배를 입에서 떼지 못했습니다. 맞선을 본 형수가 우리집에 처음 인사를 온 날 나는 부산사투리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빠르게 읊조리는 무슨 외국어처럼 들렸습니다. 형수는 우리 집안사람이 되면서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셨습니다.
새벽 다섯 시 나는 장례식장을 나섰습니다. 새해 일출을 민족의 성산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도로가 막힐 것이 염려되어 한 시간 일찍 길을 떠났습니다. 드넓은 마니산 주차장은 차량들로 메워 터졌고, 어둠 속에서 안내요원들이 손신호봉을 흔들며 임시주차장으로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계산착오였습니다. 마니산 참성단에 오르는 등반 시간을 한 시간으로 잡으면 신년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은 벌써 산속에서 가쁜 숨을 내쉬고 있겠지요. 선수항에 도착하니 첫배까지 시간 반이나 남았습니다. 시동을 끄고 어둠속에서 좌석을 뒤로 제치고 눈을 감았습니다.
어제 어머니는 내복을 입으라고 채근하셨습니다. “초상집은 더 추운 법이다.” 만약 내복을 입지 않았다면 새벽 추위에 저는 오들오들 떨었겠지요.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한기가 제법 매서웠습니다. 첫 배가 출항하면서 뱃머리를 돌리는 지금, 계묘년癸卯年 첫날의 해돋이 시간입니다. 포구를 감싼 산능선 뒤로 희부염한 빛이 점차 밝아왔습니다. 먼 바다로 나선지 5분, 나는 객실에서 나와 난간에 기대어 마니산줄기 뒤로 떠오르는 아침해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역광으로 잡힌 앞뒤의 산주름들이 검게 하나의 산줄기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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