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지척咫尺의 원수가 천리千里의 벗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으로 지내다 보면 먼 곳에 있는 일가보다 더 친하게 되어 서로 도우며 살게 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도 같은 의미입니다.
위 이미지는 아흔 줄의 두 이웃사촌이 보행보조기를 앞세워 언덕을 오르고 있습니다. 텃밭의 호박 줄기가 무성합니다. 어머니는 매년 호박모를 텃밭에 내려서는 경사면에 두 포기 묻었습니다. 뒷집 형수가 싹을 틔운 호박은 열매를 달지 못하고 가공할 정도로 줄기와 잎만 뻗었습니다. 형수는 작년 실한 호박을 끝없이 매다는 놈의 씨앗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우스에 싹을 틔워 이웃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F1 이었습니다.
몇 해 전 아랫집 할머니는 텃밭의 옥수수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알갱이가 빼곡한데다 맛도 좋아 가장 실한 놈을 골라 처마 밑에 매달아 종자로 삼았습니다. 포토에 싹을 틔우고 텃밭 가장자리에 줄을 맞추어 심었습니다. 더위가 찾아왔고 할머니는 입맛을 다시며 매달린 옥수수를 째겼습니다. 옥수수 자루에 셀 수 있을 정도의 옥수수 알이 붙었습니다. 강원도찰옥수수 보급종으로 역시 F1 이었습니다.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지 14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바다건너 보이는 섬 석모도에서 나셨습니다. 자식으로 3남1녀를 두었습니다. 몇 해 전 고명딸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연세는 올해 아흔이 되셨습니다. 아랫집 할머니는 열여섯에 주문도로 시집을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빵공장을 하시면서 이사를 자주 다녀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에 사셨다고 합니다. 2남3녀를 두셨는데 얼마 전 딸 하나를 가슴에 묻으셨습니다. 올해 아흔 둘이십니다. 할머니는 젊으실 적 주문도의 자연산 굴을 함지박에 이고 강화도 방방골골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집 뒤울안 수돗가에서 한껏 목청을 높인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랫집 할머니는 귀가 잡수셔서 어머니는 대화를 하시면서 악을 쓰십니다. 두 분은 하루에 두세 번은 언덕을 오르내리십니다. 아랫집 할머니가 안 보이면 어머니는 궁금해서 언덕 아래로 향하십니다. 우묵한 지형의 아랫집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무더위가 심합니다. 지대가 높은 바람꼬지 우리집으로 아랫집 할머니의 발걸음이 바빠 지셨습니다.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언덕에 여섯 채의 가옥이 자리 잡았습니다. 언덕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산자락 서도교회와 초입의 집 한 채. 우리집과 뒷집, 언덕 정상의 맞은 편 감나무집 그리고 봉구산자락 옛길의 동떨어진 집은 도시인의 주말별장입니다. 교회초입의 홀로 사는 아주머니는 두문불출 형입니다.
“할머니 두 분 안 계시면 일을 어떻게 하나”
고추 꼭지를 따며 감나무집 형이 말했습니다. 감나무집과 뒷집은 매년 고추를 1,500-2,000포기씩 심었습니다. 섬에서 돈을 만질 수 있는 환금작물은 고추가 유일했습니다. 고추는 더위가 무르익으면 수확이 시작됩니다.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작물입니다. 수확해 집으로 들여온 고추를 세척기로 닦아냅니다. 폐그물을 깔고 하루쯤 햇볕에 말려 물기가 가시면 사람 손으로 일일이 꼭지를 따고 칼로 반쪽을 냅니다. 그리고 건조기에 말립니다. 어머니와 아랫집 할머니는 감나무집과 뒷집의 고추 손질에 없어서는 안 될 일꾼입니다. 두 집 형수는 두 할머니를 시어머니 모시듯 열과 성을 다합니다. 별미가 생기거나 반찬을 만들면 두 할머니를 합께 챙깁니다. 뒷집 형수는 두 할머니의 머리손질도 척척입니다.
어머니와 아랫집 할머니는 헝겊쪼가리, 비닐봉지 하나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절약이 몸에 베였습니다. 지구온난화가 불러 온 기후변화로 인류는 공포의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세기말의 인류 멸종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도래할지 모르겠습니다. 두 할머니가 살아오신 삶은 오늘날의 위기에서 가장 존경받아야할 모범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가장 위대한 삶을 사신 분들은 시골에서 흙을 파다 이름 석자 남기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신 분”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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