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여명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다. 물때는 여섯 물이었다. 조개잡이에 나선 대빈창 주민 네 분이 모래밭에서 갯벌로 발을 옮겼다. 그때 경운기 한 대가 뒤따랐다. 그들은 운이 좋았다. 경운기 적재함에 올라탔다. 경운기는 노둣길을 따라 왼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멀리 무인도 분지도 구역에 들어설 것이다. 직선거리 1.5㎞의 갯벌을 걷는 일은 고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갯벌의 이동수단 경운기를 모는 분은 두세 명이었다. 주민들은 포터 또는 사륜오토바이를 끌고 물때에 맞춰 나왔다. 바위벼랑 나무테크 계단 공터에 주차하고 맨몸으로 갯벌에 들어갔다. 낡은 배낭이 등에 매달렸고, 손에 그레・호미가 쥐어졌다. 무릎장화를 신었다. 토시로 팔목을 묶었다. 챙이 긴 모자로 햇빛을 가렸다.
백합은 이매패류二枚貝類 연체동물로 패각에 백가지 무늬가 있어 이름이 붙었다. 조개 중의 조개라는 의미로 상합으로 불리었고, 큰 조개라는 뜻으로 대합이라고도 했다. 전북 부안이 주생산지였으나 새만금방조제로 엣말이 되었다. 이제 한강 하구의 민통선 주문도・볼음도 갯벌에서 볼 수 있다. 한강이 운반해온 모래가 쌓여 형성된 모래갯벌에 백합이 풍부했다. 백합은 대형 수산시장에 가야 볼 수 있는 고급조개였다.
조개구이나 조개탕으로 먹지만 맛을 아는 이들은 현지에서 갓 잡은 백합을 회로 먹었다. 백합은 모래갯벌에 살아 다른 조개와는 달리 해감이 필요치 않았다. 백합 패각으로 만든 흰 바둑알을 최고급품으로 여겼다. 백합은 입만 벌리지 않으면 오래 살았다. 주민들은 백합을 절대 냉장고에 넣지 않았다. 그물망에 담아 바람 잘 통하는 시원한 그늘에 무거운 돌로 지질러 놓으면 일주일도 끄떡없었다. 잡은 백합은 다음날 삼보12호 첫배로 강화도로 내보냈다.
서도西島 주민들은 흔히 상합이라고 불렀다. 밤새 갈바람이 세차게 몰아친 다음날이면 열일 제쳐두고 갯벌로 나섰다. 일명 ‘웅덩이 상합’이었다. 물결 따라 떠내려 온 상합이 패인 웅덩이마다 가득했다. 운 좋은 이는 혼자 100㎏의 상합을 채취했다. 대빈창 갯벌의 경사는 완만했다. 느리 선창의 바닷물이 멀리 빠져 나가는 것을 보고 대빈창 해변에 나서면 갯벌은 아직 물로 흥건했다. 푸른 여명이 가시는 대빈창 갯벌이 바닷물을 분지도 뒤로 밀어내면서 서서히 바다를 열고 있었다. 주문도 주민들이 바다가 열리는 길을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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