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10

살얼음 이는 바다

위 이미지는 앞서 포스팅한 「푸른 여명」의 무인도 분지도가 마주보이는 대빈창 바위벼랑아래 제방이다. 예각으로 사석을 올려쌓은 제방아래 커다란 돌들을 길게 바닥에 잇대어 늘어놓았다. 만조시 하루에 두 번 제방을 때리는 바닷물의 힘을 분산시키는 방책이었다. 돌덩어리들은 제방을 때리는 파도에 휘둘려 시간이 갈수록 흐트러졌다.오래전 태풍이 서해를 타고 올라왔을 때 나는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을 목격했다. 그날도 여지없이 새벽 산책을 나갔었다. 거센 폭풍을 등에 업은 집채만한 파도가 들이닥치자 제방은 힘없이 무너졌다. 그 시절 제방은 콘크리트 옹벽이었다. 덩치 큰 돌덩어리로 다시 제방을 쌓았다. 할멈 둘이 앞서 걸어가고 있다 // 살얼음 갯바위 틈새 / 얼어죽은 한 마리 주꾸미 주우려 // 갯바위를 걸어서 / 굴바..

볼음도의 보름이

나의 블로그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리뷰는 「뒷집 새끼 고양이」였다. 새끼 고양이 재순이와 노순이를 처음 만난 것이 8년 전 초여름이었다. 그때 녀석들을 뒷집 뒤울안 배나무 가지에 올려놓고 이미지를 잡았다. 지금 배나무는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았다. 노순이와 재순이는 느리선창 매표소에서 분양받은 남매였다. 남매 고양이보다 일 년 빠른 덩치가 작았던 검돌이는 이년 전 가출해서 소식을 알 수 없다. 노순이는 새끼를 잘 낳았다. 네다섯마리씩 새끼를 낳던 녀석은 여섯 배 째부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한 마리만 남았다. 사나웠던 얼룩이는 강화도 방앗간에 분양되었다. 요즘 어미를 따라 우리집에 놀러오는 노랑이는 일곱 배 째였다. 감나무집 나비는 대빈창 길냥이 사 형제 중 막내였다. 섬은 길냥이가 눈에 띄게 많았다...

푸른 여명

소야도 선착장 낡은 함석집 한 채 / 바다오리 떼 살얼음 바다에 / 물질을 하는데 //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밤바다에 성근 눈발이 내리고 / 굴뽕 쪼는 소리 //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 밤바다에 눈은 내리고 이세기의 「소야도 첫눈」의 부분이다. 위 이미지는 대빈창 해변의 바위벼랑에서 바라본 무인도 분지도였다. 물때는 네 물이었다. 밤의 밀물이 들면서 백사장에 살얼음이 주름주름 쌓였을 것이다. 새벽 온도가 떨어지고, 살얼음은 허옇게 성에로 얼어붙었다. 섬사람들은 죽쎄기라고 불렀다. 제방아래 밤물이 닿은 백사장의 상한선 죽쎄기의 바다물결 주름이 선명했다.황도(黃道, ecliptic)는 1년 동안 태양이 하늘을 이동하는 경로를 가리켰다. 여름 해돋이는 동녘하늘 석모도 해명산에서 떠올랐다. ..

멧비둘기의 좌절

바야흐로 절기는 입춘立春을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로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 절기입니다. 이날 아침은 ‘입춘을 맞아 큰 복이 있을 것이다’라는 입춘대길立春大吉과 ‘양의 기운이 일어나서 경사스러운 일이 많을 것이다’라는 건양다경建陽多慶을 대문이나 기둥에 붙였습니다. 멧비둘기는 이 땅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로, 몸길이는 33㎝ 정도입니다. 온 몸은 잿빛과 포도주색으로 뒤덮였고, 목의 양옆 잿빛 깃털에 가로띠 모양의 얼룩점이 몇 가닥 있습니다. 깃털마다 가장자리가 녹이 슨 것 같은 무늬가 새겨졌습니다. 비둘기의 귀소성歸巢性을 이용한 통신용으로 문서 비둘기가 옛날부터 폭넓게 이용되었습니다.열년 열두 달 쉬임 없는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산책은 오늘도 여지없습니다. ..

청양고추를 삼킨 기러기

겨울 햇살이 봉구산을 넘어 온 늦은 아침, 산자락 옛길을 따라 아침 산책에 나섰다. 이미지는 고추밭에서 휴식을 취하던 기러기 떼가 인기척에 놀라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옛길은 산자락을 벗어나 논길로 이어지고, 대빈창 해변 제방에 연결되었다. 길을 따라가면 기러기 똥이 여기저기 널렸다. 두 잠을 잔 누에 같기도 하고, 난로 땔감 펠릿처럼 생겼다.주문도의 겨울 전령은 기러기였다. 녀석들은 콤바인이 들녘에 나타나는 때를 용케 알아챘다. 벼를 벤 논바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는 흘린 낱알을 알뜰하게 주워 먹었다. 몇 년 전부터 겨울 주문도 들녘에 기러기가 많이 날아왔다. 교동대교와 석모대교가 놓였다. 두 섬이 뭍과 연결되며서 녀석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공룡알이나 마시멜로로 부르는 ‘볏짚 ..

달력을 걸다.

나는 매년 내 방의 출입문과 책장사이 공간에 달력을 걸었다.  2021년 이철수 판화달력을 걷어내고, 2022년 신영복 붓글씨달력을 드러냈다. 달월을 가리키는 숫자아래 《禁酒》를 붙였다. 주문도에 터를 잡은 후 내 방의 달력은 판화달력과 붓글씨 달력에서 골랐다. 올해는 故 신영복 선생의 붓글씨달력이었다. 1월의 글씨는 큰 글씨로 ‘흙내’, 작은 글씨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모든 쇠붙이는 가라’는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의 한 구절이었다.술을 끊은 지 햇수로 4년, 개월 수로 32개월을 넘어섰다. 금연은 벌써 만 13년을 앞두고 있었다. 내가 주문도에 첫 발을 디딘 날이 2005. 7. 25. 이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이사 온 날은 2008. 11. 2. 이었다. 텃밭머리에 아버지와 누이를 수목장..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다.

주문도注文島는 아뢸 주奏, 글월 문文을 써서 주문도奏文島라 불렀었다. 조선조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한양의 임금에게 하직의 글을 올렸다는데서 유래했다. 강화군 서도면西島面소재지로 사람 사는 4개 섬 볼음도, 아차도, 말도의 주도主島이다. 강화도江華島에서 서해 바다로 14.5㎞정도 떨어졌다. 면적은 4.55㎢이고, 해안선 길이는 13.0㎞의 작은 섬이다. 섬은 가오리 모양으로 최고봉은 섬 북쪽의 봉구산(烽丘山, 147m)이다. 섬의 산줄기는 동북에서 서남으로 이어졌다. 섬의 동남과 북서에 논이 제법 넓게 분포하고, 간척사업으로 해안선이 단조롭다. 자연부락은 봉구산 남사면의 진말과 북쪽 해안에 대빈창 마을이 들어섰다. 화도 선수항에서 출항하는 정기여객선이 왕복 운항한다. 섬의 인구는 통..

뒷집 새끼 고양이 - 29

노랑이가 내 방 책장 앞에서 뒹굴뒹굴 혼자 놀고 있다. 녀석은 태어난 지 두 달이 지났다. 노랑이는 어미 노순이를 빼닮았다. 노순이를 이뻐하는 뒷집 형수가 그래서 노랑이를 더 챙기는지 모르겠다. 노랑이를 꽃동네에 분양하지 않고 뒷집에서 키우기로 했다. 내가 짓고 혼자서 불렀던 이름을 녀석에게 붙였다. 나는 노랑이를 보러 하루 두세 번 발걸음을 했다. 녀석은 하는 짓이 순해 정이 갔다. 노랑이가 보이지 않아 서운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디선가 새끼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관 로비에서 노랑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구라탕에 굴을 쪼러 나가는 형수를 데려다주고 온 뒷집 형이 노랑이를 우리집에 데려다놓았다. 새끼 고양이와 반시간을 놀았다. 앙칼진 얼룩이는 강화도의 미꾸지고개 방앗간에 분양되었다. 정미소는..

서도 볼음도 은행나무

나의 생에서 가장 친근한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4호 강화江華 볼음도乶音島 은행나무다. 한 달에 네댓 번은 볼음도에 건너갔다. 선착장에서 시작되는 강화도나들길 13코스(서도 2코스)를 따라가면 섬의 가장 안쪽 마을 안말의 은행나무 공원에 닿았다. 볼음도 나들길은 본연의 길(道)의 의미를 걷는이에게 되묻는 길이었다. 故 신영복 선생은 길의 본뜻을 이렇게 풀어냈다.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고,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한다. “길(道)이란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볼음도 은행나무는 8백여 년 전(고려시대) 대홍수로 뿌리 째 떠내려 온 나무를 섬사람들이 건져 올려 산자락에 심었다고 한다. 오늘에 이르러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가 9m에 이르는 노거수老巨樹가 되었다..

달빛커튼 드리운 바다

계절은 24절기에서 열여덟 번째 절기 상강霜降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상강은 한로寒露이후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며 밤에 기온이 떨어져 서리가 내린다는 늦가을의 절기였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일출은 반시간을 더 기다려야했다. 섬의 중앙에 솟은 봉구산을 넘어 햇살을 흩뿌리는 느리 마을의 아침은 더욱 늦었다. 손전화의 손전등으로 발밑의 어둠을 밝히며 봉구산 자락 옛길을 탔다. 대빈창 해변에 닿았다. 물때는 사리(일곱물) 이었다. 볼음도 군부대의 하늘이 불빛으로 훤했다. 나는 바다에 드리워진 금빛물결을 보며 아! 저것이 ‘달빛커튼’ 이구나 중얼거렸다.우리나라 펜션 상호에서 가장 낭만적인 이름 〈달빛커튼 드리운 바다〉는 시인 함민복의 작명이었다. 나는 산책에서 돌아와 시인의 두 번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