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9

'도지'가 몰려 온다.

저녁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년중 낮 시간이 가장 긴 절기인데 하늘이 어두워져오고 있었다. 대빈창 해변 제방에 들어섰다. 바위벼랑 반환점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거센 광풍이 휘몰아치며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뛰다시피 걷던 마을주민 세 명이 나를 지나치며 말했다.  “도지가 몰려 온다.” '도 - 지, 도 - 지' 나는 낮게 중얼거리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들은 뜀박질로 나와 빠르게 멀어져갔다. 동녘에서 빠른 속도로 하늘을 뒤덮으며 쫓아오던 먹장구름이 나를 추월했다. 볼음도 해변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검은 구름이 덮쳐 들었다. 대기는 낮 동안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갑작스럽게 바람이 몰아치며 작은 섬을 휩쓸었다. 나는 바람결에서 미세한 물기를 감지했다. 발걸음을 뒤돌려 빠르게 마을로..

마석 모란공원을 다녀오다 - 4

이년 만에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민주열사묘역에 발걸음을 할 때마다 찌는 듯이 무더웠다. 나는 항상 모란공원 미술관 앞에 차를 주차했다. 정문 앞 꽃집의 문을 밀쳤다. 국화 10송이를 샀다. 시간은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길눈이 어두워 지난 참배 때 찾아뵙지 못했던 故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사저 건축가 정기용(1945 - 2011) 선생의 묘소를 찾아 나섰다. 모란공원 묘역은 넓었다. 나는 그동안 경춘국도변 정문 입구의 오른편에 자리 잡은 민주열사묘역에 참배했다. 모란공원 묘역 출입문은 세 곳이었다. 정문, 남문, 서문. 안내도의 정기용 선생의 묘소는 서문 초입에 있었다. 나는 다시 차를 끌고 달뫼고개를 넘었다. 한 시간여 서문 근처 묘소를 두리번거렸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년 전에 이어 두..

강화속노랑고구마

서너해 묵었던 우리집 옆밭에 다시 고구마가 심겼습니다. 봉구산 등산로 초입 강화속노랑고구마밭 전경입니다. 아침 6시경 석모도 관음도량 보문사가 앉은 낙가산에서 떠오른 아침 해가 부풀어 오른 사리 바다위에 붉은 햇살을 흩뿌렸습니다. 느리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개나리와 찔레꽃이 촘촘하게 밭가를 둘러 싼 밭이었습니다. 고구마 싹이 자라자 고라니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밭을 침범하여 제멋대로 들고났습니다. 밭주인은 폐그물로 고라니 방지용 울타리를 한 바퀴 둘렀습니다. 바다에서 막 건져 온 그물처럼 부표가 그대로 매달렸습니다.강화속노랑고구마가 강화도 특산물로 자리 잡은 지 어언 10여년이 흘렀습니다. 고구마는 전분 함유량에 따라 밤고구마와 물고구마로 구별됩니다. 밤고구마는 단맛이 덜하나 저장성이 강하고,..

뒷집 새끼 고양이 - 26

노순이가 여섯 배 새끼를 낳은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노순이는 부속건물 창고의 바닥에서 한턱 높게 마련해 준 골판지 박스 분만실을 여지없이 마다했습니다. 노순이가 집을 나간 지 3일 만에 돌아왔습니다. 녀석은 혼자 새끼를 낳고 돌보다 배가 고파 할 수 없이 집을 찾았습니다. 형수가 노순이의 뒤를 밟았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 노순이는 분만실을 마련했습니다.뒷집 형수는 느리 선창가는 길의 집주인에게 열쇠를 빌렸습니다. 다랑구지 논과 봉구산 등산로 사이 경사지 밭에 고구마와 고추가 심겼습니다. 산책로  봉구산자락 옛길과 외떨어져 농기계창고가 앉았습니다. 창고 마당 한켠에 허리를 굽혀야 드나들 수 있는 옛 오두막이 한 채 남았습니다. 작년 가을 태풍에 함석지붕이 날아가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채 방..

곤릉의 링반데룽

사적 제 371호 강화江華 곤릉坤陵을 찾아가는 길은 나에게 링반데룽이었다. 독일어 링반데룽Ringwanderung은 둥근 원을 뜻하는 ‘Ring’과 걷는다는 뜻의 ‘Wanderung’이 합쳐진 환상방황環狀彷徨을 가리켰다. 등산 도중 짙은 안개·폭우·폭설과 같은 악천후로 인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같은 지역을 맴도는 현상이었다. 20여 년 전 강화도 답사기 『강도江都를 가다』를 지역신문에 연재하며 양도 길정리의 고려왕릉을 찾았다. 그 시절은 이정표조차 제대로 서있지 않았다. 길도 없는 산속을 아마존의 원주민이 밀림을 뚫고 나가는 것처럼 고역을 치룬 끝에 간신히 능역에 닿을 수 있었다. 그때 찾은 능이 석릉인지 곤릉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곤릉으로 향하는 마을길에 들어섰다. 양도에서 불은 방..

석릉의 신록

사적 제 369호 고려 21대 희종熙宗의 무덤 석릉碩陵은 울울鬱鬱한 신록新綠을 뚫고 나아가야 만날 수 있었다. 양도에서 불은으로 향하는 고려왕릉길을 가다 《강화江華 석릉碩陵》 안내판이 가리키는 마을길로 좌회전하여 꺽어들었다. 뱀이 기어가는듯한 마을길은 다랑구지 논이 띄엄띄엄 나타나는 골짜기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길가 집들의 화단마다 불두화와 붓꽃이 만발했다. 마을길은 신록이 우거진 산길로 이어졌다. 막다른 길의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륙색을 쟁였다. 석릉은 진강산의 동쪽 남사면에 자리잡았다. 릉을 찾아가는 산길은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다 산사면을 횡단하며 구불구불 이어졌다. 녹음이 우거진 산속은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산짐승의 피해를 방지하는 철책이 오르막 산길을 줄곧 따라왔다. 길가의 ‘어두고..

까치와 고양이

주말 이틀 내내 빗줄기가 퍼부었습니다. 89mm라는 5월 중순 역대급 강우량을 기록했습니다. 줄기차게 쏟아 붓는 봄비로 대빈창 다랑구지의 무논이 빗물로 흥건했습니다. 새로운 주말을 시작하며 일찌감치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하늘은 그래도 부족하다는 듯 잔뜩 찌뿌듯했습니다. 허공을 한 주먹 쥐었다가 손바닥을 벌리면 물기가 묻어날 것 같았습니다. 고구마와 고추 묘가 한창 심겨지고 있는 밭과 봉구산자락 사이를 이리구불 저리구불 옛길이 흘러갔습니다. 돌아오는 산책에서 낮은 오르막에 올라서면 대빈창 언덕 우리집 옥상의 태양광 패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이제 집에 거의 다 왔습니다. 뒷집 뒤울안으로 눈길을 돌리자 까치가 머뭇머뭇 걸음을 옮겼습니다. 까치를 예의 주시하던 재순이가 잔뜩 부르튼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

별식別食 하는 날

휴일 햇살이 자글자글 했습니다. 혼탁한 대기의 황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오늘따라 송홧가루도 주춤하는 모양새입니다. 아차도, 볼음도, 석모도, 서검도, 미법도, 교동도. 서해의 섬들이 파란 바탕의 도화지에 돌연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읽던 책을 덮고, 운동화 끈을 매었습니다. 일찌감치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올 봄은 비가 잦아 천수답 다랑구지마다 물이 흥건했습니다. 관정에서 지하수를 퍼 올렸던 모터소리도 숨을 죽였습니다. 가을갈이를 한 무논을 트랙터가 써레질하고 있었습니다. 트랙터 뒤를 쫓아다니는 십 여 마리의 중대백로와 황로의 날개 짓이 분주합니다. 녀석들은 모두 황새목 백로과에 속하는 여름 철새입니다. 중대백로는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번져 흔하게 눈에 뜨이는 제법 덩치가 있는 녀석입니다. 암컷과 ..

연못골의 둠벙

절기는 푸르름이 산하를 뒤덮어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입하立夏 입니다. 멀리 봉구산 기지국 철탑이 흰 구름을 들렀습니다. 나무마다 초록의 농담濃淡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파스텔 톤으로 신록이 짙어가면서 봄이 무르익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주문도 연못골의 둠벙입니다. 대빈창 다랑구지 들녘은 지하수 관정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가뭄이 심했습니다. 저수지를 앉힐 마땅한 터를 찾을 수 없는 지형입니다. 고심 끝에 연못골에 1300평의 둠벙을 팠습니다. 주위 논들을 둠벙으로 확장할 계획이지만 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를 도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연못골은 지명 그대로 다시 물을 가두었습니다. 작은 섬 주문도는 중앙에 해발 196m의 봉구산이 자리 잡았습니다. 연못골은 봉구..

까마귀 이제 바다를 넘보다. - 2

주말 대빈창 해변 오후 산책에 나섰습니다. 물 빠진 갯벌에서 무엇인가 두리번거리는 까마귀들을 보았습니다. 벌써 6년 반이 흘렀습니다. ‘까치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바다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배의 흰 무늬가 점차 검은 색으로 바뀌면서 까마귀로 변합니다. 들물의 바다 속으로 잠수하는 까마귀가 차츰 가마우지로 변합니다. 커다란 물고기를 부리에 문 가마우지가 가쁜 숨을 내쉬며 그물말장에 내려앉았습니다. 등털이 회색으로 뒤덮으면서 갈매기로 변하고 있었습니다.’「까마귀 이제 해변을 넘보다」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나의 상상 속의 조류진화도(?) 입니다.해송 솔숲을 가로질러 해변 제방에 올라섰습니다. 보안등 전봇대에 연결된 전선에 까마귀 서너 마리가 특유의 음산스런 울음으로 나를 맞아 주었습니다. 여전히 대빈창 해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