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9

황형黃衡은 누구인가

20여 년 전 강화경찰서 진입로에 〈황사영 생가터〉 입간판이 서 있었다. 나는 그때 먼지가 이는 비포장 길을 타며 황사영 백서사건을 떠올렸다. 황사영(1775 - 1801)은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사위로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신유박해 때 충청도 제천 배론의 토굴에 은거하며 북경주교 고베아에게 보낸 비밀문서가 서울에서 압수되었다. 백서帛書는 한 자 크기의 비단에 작은 글씨로 13,311자를 적은 천주교 재건책이었다. 백서에서 문제가 된 내용은 서양 제국주의에 무력으로 포교를 요청한 대목이었다. 황사영은 1801년 11월 대역죄로 처형되었다.비포장도로를 따라가자 경사가 급한 산자락을 깎아 앉힌 사당이 나타났다. 커다란 태극 문양의 솟을삼문과 담장을 현대식 블록으로 둘렀다..

그곳에 묘가 있었다.

20여 년 전 강화도 답사 때 나의 발길이 빗겨갔던 묘를 찾았다. 고려 말의 문인 충목공忠穆公 허유전(許有全, 1243 - 1323)에 대한 과문이 무덤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불은면사무소 앞 삼거리 불은농협을 오른쪽에 끼고, 산골짜기 500여 미터를 구불구불 올라갔다. 길은 산중 깊숙이 파고 드는데, 근래 신축한 집들이 늘어섰다. 무덤은 골 깊은 산중에 자리 잡았던 것이 틀림없었다.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26호 허유전 묘 100m →〕 입간판이 더 이상의 산속 진입을 막았다.돌로 포장한 완만한 경사면을 30여 미터 오르자 키 높은 홍살문 옆에 작은 비 〈허시중공묘소許侍中公墓所〉와 〈하마비下馬碑〉가 서있다. 사당으로 향하는 언덕길은 종친에서 세운 공덕비가 늘어섰다. 솟을대문 처마아래 현판은..

가릉 가는 길

몽골 제국 침략에 맞서 강화도는 고려의 39년(1232 - 1270년) 동안 전시戰時 수도였다. 강화도의 왕릉은 강화경江華京 시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였다. 강화도의 왕족 무덤으로 보이는 석실분은 모두 7기였다. 피장자被葬者가 밝혀진 무덤은 4기로 고려산의 홍릉(洪陵, 사적 224호)과 진강산의 석릉(碩陵, 사적 369호), 가릉(嘉陵, 사적 370호), 곤릉(坤陵, 사적 371호)이다. 가릉은 양도 능내리陵內里 진강산 자락에 있었다.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능은 마을 안쪽에 있었다. 읍내에서 화도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면 가릉포 들녘을 앞두고 고갯길 좌측에 마을회관이 있다. 회관 안마당의 수령 200년 노거수老巨樹 느티나무가 찾는이를 반기듯 다가섰다. 나는 20여년 저쪽의 세월 강화도 답사를 하면..

주문도의 신新 관문關門 살꾸지항

〚기대와 바램의 결실! 선수↔살곶이 취항을 축하합니다.〛 〚역사적이고 숙원사업 선수↔주문도(살곶이) 여객선 취항을 축하합니다.〛 〚주문도 주민이 바라던 항로 취항을 환영합니다.〛 신 선창에 걸린 현수막 문구입니다. 주민 일동과 의용소방대와 부녀회에서 내걸었습니다. 조립식 건물로 매표소와 화장실이 새로 들어섰습니다. 위 이미지는 2021년 3월 1일 아침 7시 30분 선수항에서 출항한 1항차 삼보6호가 살꾸지 선창에 접안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선창에 들어서는 첫배의 모습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새벽부터 줄기차게 쏟아졌습니다. 배시간은 35분으로 잡았지만 날이 궂어 파도가 높아서 그런지 7 - 8분 지연되었습니다. 강화도 ↔ 서도의 단축·분리 항로 운항이 개시되는 날 하늘도 시샘..

대빈창 길냥이 - 3

"감나무집..저희네요 ㅋㅋㅋ할머니는 저희때문에 데려오신것도 있지만 정말 잘 키워주시고계십니다 갇힌거 아니구요 ㅠㅠ마당도 돌아다니고 집에들어와서 할머니랑 티비도 보면서 세상 누릴거 다 누리면서 살고있어요!!" "감나무집 손녀이시군요. 대빈창 길냥이 막내가 해변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비실거렸는데, 주인을 잘 만나 아주 튼실해졌어요. 오늘도 녀석을 보았는데 목에 예쁜 목테까지 매고 있더군요. 아무쪼록 녀석이 하늘이 부여한 생을 온전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대빈창 길냥이 - 2」에 달린 댓글과 답글이다. 길냥이 4형제를 대빈창 해변의 버려진 수족관에서 처음 만난 것이 지난해 장마철이었다. 녀석들은 자신들의 운명대로 삶의 길을 찾아 나섰다. 뭍으로 나가는 이에게 맡겨진 맏이는 섬을 떠나기가 싫었는지 가출했다. ..

홍릉의 입춘

신축년 입춘立春 고려 고종 홍릉을 찾았다. 사적 제224호로 『고려사高麗史』에 홍릉洪陵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홍릉弘陵으로 표기되었다. 외포항에서 고려저수지 제방을 타고 고비고개를 넘자 좌측에 이정표가 서있다. 길가의 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서자 〈국화리학생야영장〉이 나타났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야영장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출입구마다 쇠사슬이 입을 봉했고, 차량통제구역 바리게이트가 막아섰다. 붉은 글씨의 〈접근금지〉, 〈위험〉 팻말을 CCTV가 지켜보고 있었다. 야영장을 지나자 능을 향해 잘 손질된 돌계단이 나타났다. 능으로 향하는 길은 돌계단과 흙길이 번갈았다. 산비탈을 급하게 치 내려온 물길을 덮은 직사각형 돌들이 일렬로 가지런했다. 문화재를 다루는..

뒷집 새끼 고양이 - 25

“노란 놈이 웬 종일 쫓아다니며 알랑거리는구나” 어머니의 말씀이십니다. 뒷집 형네 부부가 출타하면 고양이 남매 오빠 재순이와 누이동생 노순이는 그날부터 스스로 우리 집에 입양됩니다. 이번 외출은 5일간입니다. 아침 첫배가 출항하는 시간 어김없이 두 녀석이 우리 집에 나타났습니다. 허기진 속을 채우러 나타난 것입니다. 누이 노순이는 아주 착한 고양이입니다. 녀석은 절대 먹이를 달라고 보채지 않습니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문이 열리기를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우리 모자가 현관문을 밀치면 쏙! 집안으로 들어섭니다. 동작이 얼마나 날랜 지 녀석이 집에 들어 온 것을 눈치 못 챌 때마저 있습니다. 녀석의 행동은 그림자처럼 조용합니다.개사료를 그릇에 담아 바닥에 내려놓으면 노순이는 얌전하게 먹을 만큼 입에 댑니다..

겨울 안개

2021년 신축년辛丑年 세밑과 새해는 동장군이 기세를 떨쳤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유발시킨 기상이변의 하나였습니다. 북극의 한랭기류가 확장하면서 제트기류를 밀어냈습니다. 제트기류는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지표면 8 - 10㎞ 상공에서 부는 강력한 편서풍입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기의 대류 현상으로 일어나는 기상현상입니다. 제트기류가 정상 경로를 벗어나면 온화한 겨울이 사라졌습니다. 북극의 한랭기류가 한반도를 덮치자 한강이 얼어붙었습니다. 사나흘 북극발 한파가 물러나자 한강의 유빙이 햇볕에 녹아내렸습니다.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 한강의 얼음덩어리들이 강화 앞바다로 밀려 들 것 입니다.절기는 대한에서 입춘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보름 만에 뭍에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전날 겨울비답지 않게 10mm의 강수량을 기록했습..

겨울 산책

5일 만에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요즘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의 일출시간은 7시 50분, 일몰 시간은 5시 40분입니다. 절기상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집니다. 해가 짧아지는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산책을 실내운동으로 대신합니다. 주말이 돌아오면 해가 봉구지산을 넘는 늦은 시간에 산책을 나서게 됩니다.  기온이 다시 영하로 떨어졌습니다. 두건과 장갑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봉구산자락을 따라가는 산책길에 올라섰습니다. 옛길은 산자락을 일군 밭과 다랑구지 논의 경계를 지으며 해변으로 향합니다.밭가를 두른 폐그물 울타리에 갇힌 고라니가 나를 보고 당황스런 뜀박질로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전세계적 희귀종으로 전체 고라니의 90% 이상인 10만개체가 한반도에 살아갑니다. 산책을 나설 때마다 눈에 뜨이는 고라니가 ..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소띠 해였다. 강화도의 일출시간은 7시 50분이다. 평소처럼 6시 30분에 일어났다. 세밑 한파가 매서웠다. 이틀이나 수은주는 영하 10도 이하를 가리켰다. 뒤울안 야외 수도가 동파되었다. 임시방편으로 고무 밴드로 묶었다. 날이 풀려서야 수도공사 일판을 벌일 수 있겠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주문도에 삶터를 꾸리고 아침을 먹고 봉구산에 올랐다. 아침저녁 산책을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면서 나의 발걸음은 산행을 멀리했다. 인적 없는 산길은 떡갈나무 낙엽이 뒤덮었다.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가 며칠 전 볼음도에서 주문도로 건너왔다. 살꾸지 선착장 모래 해변에 멧돼지 가족의 발자국이 뚜렷했다. 밤의 잔영이 가시지 않은 어슴푸레한 쓰러진 고목 뒤에서 씩씩거리는 어미돼지의 숨찬 소리가 들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