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9

시절이 하 수상하다.

완전한 삶을 살다 간 우리 시대의 의인 스콧 니어링(1883 - 1983)은 말했다. “나는 총선거에서 자본주의 후보(아무리 ‘자유주의자’라 해도)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것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실질적인 참정권을 획득한 1987년 이후, 대선은 민중후보에게, 총선은 진보정당에 표를 던졌다. 막내아들의 정치성향을 쫓아 한 표를 던진 어머니가 언젠가 말씀하셨다. “어째, 이날 이때까지 니가 찍으란 사람은 한 명도 안 되냐?”엊그제 4월 15일은 한국의 21대 총선일이었다.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 포함 180석, 야당 미래통합당은 꼼수정당 미래한국당까지 103석을 얻었다. 무소속은 5석이었다. 그외 비례정당..

할미꽃이 뿌리를 내렸다.

옛날 어느 산골에 할머니가 두 손녀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큰 손녀는 예뻤으나 마음씨가 고약했고, 작은 손녀는 얼굴은 못생겼으나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왔습니다. 큰 손녀는 이웃마을 부잣집으로, 작은 손녀는 고개 너머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작은 손녀가 할머니를 모시기를 바랐으나, 남의 눈을 의식한 큰 손녀가 억지로 할머니를 모셨습니다. 고약한 큰 손녀는 할머니를 푸대접했습니다.끼니조차 제대로 못 이은 할머니는 작은 손녀를 그리워하며 먼 길을 나섰습니다. 배가 고픈 할머니는 작은 손녀가 사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작은 손녀는 할머니를 옛집 뒷동산 양지바른 터에 묻어드렸습니다. 이듬해 봄에 풀 한포기가 무덤에 솟아올랐습니다. 풀은 할머니의 굽은 허리처럼 꽃을..

민중미술 박진화 화백을 아십니까

위 이미지는 한달 전 박진화 화백의 작업실에 들렀다가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손전화로 한 컷 담은 이미지입니다. 화백의 작업실은 볼음도 샘말에서 안말로 넘어가는 몇 필지의 논배미가 바다로 고개를 쑥 내민 얕은 둔덕에 자리 잡았습니다. 주문도에서 오후 2시 출항하는 객선을 타고 볼음도에 닿았으니, 3시경 무렵입니다. 출입문의 녹슨 열쇠가 꽂혀 있는 손잡이를 돌리자 클래식이 텅 빈 공간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빈 이젤과 마무리되어가는 대형 화폭이 벽에 기대었고, 석유풍로도 불을 밝힌 채 그대로입니다. 며칠 뒤 전화를 넣으니, 화백은 산책에 나섰다고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둔감한 나는 화백께 물었습니다.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강화읍 대산리에서 볼음도로 적을 옮기고 동네잔치를 여는 화백의 집들이에 소..

역병의 창궐로 발이 묶이다.

위 이미지는 같은 카테고리의 글에 첨부된 사진과 크기가 다릅니다. 나의 손전화 카메라 이미지는 파노라마처럼 가로로 길게 누웠습니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위 이미지는 나의 인생에서 처음 가입한 밴드에서 다운 받았습니다. 현재 중국 연길에서 치료중인 환우가 방금 도착한 국제택배의 사진을 밴드에 올렸습니다. 지난해 10월초 별스럽지 않던 몸의 증상이 신경에 거슬렸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동반한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삶의 그날까지 이어질 불편을 떠올리면 온 몸의 신경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졌습니다. 이 땅의 치료법은 완치를 꿈꿀 수 없었습니다. 통증을 완화시키는 임시변통에 불과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지린성 연변자치주 조선족 박사의 치료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다행스럽..

바다, 바닥을 드러내다 - Ⅱ

지난 3월 1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한 날입니다. 위 이미지는 3월 11일. 음력 이월 열이레 저조(12:23) - 67 물때의 주문도 앞바다 전경입니다. 달력의 물때는 인천항 기준입니다. 강화도 바다는 대략 25분을 뒤로 늦추면 정확한 물때를 맞출 수 있습니다. 감(물이 가장 많이 빠진 시점에서 물이 밀기까지 30분간 잔잔한 시기)때가 마침 점심시간이라 나는 느리 선창에 나섰습니다. 아래선창에서 올라오며 석모도와 아차도 꽃치를 바라보며 손전화 카메라를 눌렀습니다. 아차도 꽃치 앞에 2시에 출항하는 객선 삼보12호가 정박했습니다. 『바다, 바닥을 드러내다』는 9년 전 글이었습니다. 그때 년 중 가장 물..

참새의 지옥

바야흐로 절기는 경칩(驚蟄)입니다. 경칩은 우수와 춘분 사이에 있는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입니다. 일어난다는 '경(驚)'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자를 씁니다. 글자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입니다. 봉구산자락의 경사진 밭도 봄 햇살에 흙살이 풀어져 부드럽게 보였습니다. 따뜻한 계절이 돌아오자 밭 흙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느리, 대빈창, 꽃동네 3개 자연부락 주민들이 일구는 밭 작물은 대개 고추와 고구마가 주종입니다. 참깨, 들깨, 토란, 감자. 양파, 대파, 서리태, 메주콩, 녹두, 팥, 조, 수수, 김장채소를 돌려짓기 합니다.산자락과 밭의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 대빈창가는 옛길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출렁거리며 해안에 닿았습니..

용두돈대龍頭墩臺

‘강화도는 개성·서울 등 과거의 왕도王都와 근거리에 위치하여 고려 및 조선 시대에는 조운선의 통행로였다. 나라의 인후지지咽喉之地로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시되었다. 대륙민족의 침입을 받았을 때 선조들은 강화도로 대피·항쟁하여 이 지역은 일찍이 요새화되었다.’(최영준의 「강화지역의 해안저습지 간척과 경관의 변화」 中에서)  위 이미지는 강화군농업기술센터 농업인사랑방에 걸려있는 액자에 담긴 사진을 손전화로 다시 찍었습니다. 사진작가 月井 윤용완의 작품으로 용두돈대龍頭墩臺를 부감법으로 잡은 전경입니다. 강화도는 단군왕검의 개국의 얼이 살아있는 역사의 고장이면서 조국수호와 국난극복의 현장입니다. 한반도 최대 국방유적인 ‘5진鎭·7진보鎭堡·54돈대墩臺’가 강화도 해안을 빙 둘러 빼곡히 남아 구한말 격동의 역사를 생생..

함박도&은점도

위 이미지는 대빈창 해변의 나무테크 계단 쉴참에서 잡은 말도 주변 무인도입니다. 저는 왼쪽의 섬을 서해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의 하나인 우도로, 오른쪽 섬을 함박도로 여겼습니다. 서해 5도에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는 행정구역상 옹진군에 속합니다. 유일하게 강화군에 속한 우도는 민간인은 한 명도 없고, 우도경비대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미심쩍어하며 나는 이미지를 서도 해상의 섬을 잘 아는 이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왼쪽 섬은 함박도였고, 오른쪽 섬은 은점도였습니다. 아! 나는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며 은점도를 만나고 있었습니다.은점벌 사건은 1965년 10월 29일 NLL의 은점도 갯벌에서 상합잡이를 하던 남쪽 어민 100여명이 북한 경비선에 집단 납북되었다가, 11월 20일 ..

봄날은 간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2001년에 배우 이영애와 유지태가 주연을 맡아, 점점 식어가는 사랑을 그렸다. 어제 설날 연휴가 지나갔다. 내 인생의 봄날이 떠나간 지 일 년이 되었다. 이미지는 경기 북부 한 소읍의 변두리에 있는 숯불구이집에서 그녀가 만들었다. 그날 우리는 치즈 닭발을 안주로 생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기계치였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잘 다루었다. 생맥주를 마시다 그녀가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포토 이미지를 보며 우리는 크게 웃었다. 나의 이미지는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거의 흡사했다. 우리는 주말을 끼고 한 달에 두세 번 만나 이삼일을 같이 지냈다. 강화에서 한 시간 거리의 민통선과 접한 위성도시가 우리의 데이트 무대였다. 롯데시네마나 메가박스에서 개봉영화를 보고, 맛집을 순회하며..

회상回想

어머니는 분해하셨습니다. 작년 초겨울, 우리집 뒤울안 화계花階에 심겨진 둥굴레가 고약한 누군가의 손을 탔습니다. 어머니는 여름 한철, 화계 꽃나무 주변 우거진 풀에 낫질을 하셨습니다. 풀숲에 숨어있던 뱀에 놀란 어머니가 낫질을 중동무이하는 바람에 잡풀에 숨어있던 둥굴레는 용케 도둑의 손길을 피했습니다. “내년 봄에 캐 차 끓이려고 했는데······” 2008년 11월 2일 나는 김포 한들고개의 옛집에서 어머니와 짐을 바리바리 꾸려 주문도 대빈창가는 언덕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다음해 봄 봉구산 외진 산사면을 타다 둥굴레 군락을 발견합니다. 포대에 둥굴레를 캐오자 어머니는 둥굴레 뿌리를 손질하여 얕은 불에 볶아 둥굴레 차를 끓이셨습니다. 잔챙이 뿌리를 마당가 텃밭 한구석과 화계에 심었습니다. 둥굴레의 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