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봄날은 간다.

대빈창 2020. 1. 28. 06:22

영화 《봄날은 간다》는 2001년에 배우 이영애와 유지태가 주연을 맡아, 점점 식어가는 사랑을 그렸다. 어제 설날 연휴가 지나갔다. 내 인생의 봄날이 떠나간 지 일 년이 되었다. 이미지는 경기 북부 한 소읍의 변두리에 있는 숯불구이집에서 그녀가 만들었다. 그날 우리는 치즈 닭발을 안주로 생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기계치였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잘 다루었다. 생맥주를 마시다 그녀가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포토 이미지를 보며 우리는 크게 웃었다. 나의 이미지는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거의 흡사했다. 

우리는 주말을 끼고 한 달에 두세 번 만나 이삼일을 같이 지냈다. 강화에서 한 시간 거리의 민통선과 접한 위성도시가 우리의 데이트 무대였다. 롯데시네마나 메가박스에서 개봉영화를 보고, 맛집을 순회하며 맥주캔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녀와의 만남은 나의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왔다. 내가 영화관에서 본  마지막 영화는 대학시절 80년대 중반이었다. 캠퍼스를 떠나 현장노동자로 밥을 구했다. 몸을 다쳐 시골로 낙향했다. 책에 파묻히는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나의 인생에서 이성은 저만치 비켜 서있었다.

변두리 소읍의 데이트에서 벗어나 우리는 몇 번 기억에 남는 여행을 떠났다. 이박삼일의 울릉도·독도 여행은 특별했다. 그녀의 영혼은 아름다웠다. 삼 년 만에 올라온 세월호를 맞으러 진도 팽목항과 목포 신항에 발걸음을 했다.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의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참배했다. 마음에 담아 두었던 통영 여행은 그녀의 결단이 큰 힘이 되었다.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릉까지 올라왔던 드라이브가 오래도록 남았다.

오년 전 띠동갑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 같았다. 사실 그녀는 도시적 미인이었다. 그녀가 길을 지나가면 남정네들을 하나같이 고개를 되돌려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이른 봄이었다.  처음 본 그녀는 해변 가는 길에서 산책 중이었다. 그녀의 차디찬 반응에 나는 무츠름해졌다. 일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터넷을 서핑하다 그녀는 나의 블로그를 만났다. 철학서를 즐겨 잡는 독서광이었다. 일 년 전 그녀는 외딴섬의 부모집에서  큰 수술을 앞두고 요양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그녀가 몸을 추슬렀다. 우리의 만남은 사 년을 이어갔다.  지난 해 설날 연휴 만남이 마지막이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녀를 만났던 시기가 나의 인생의 황금기였다.

몸이 아픈 그녀를 끝까지 보듬지 못한 죄값으로 천형(天刑)을 받았는 지 모르겠다. 사개월 전부터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난치병이었다. 몸은 고통과 불편을 호소하는 데 현대의학은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했다. 몸의 면역력을 키워야한다는 뜬금없는 처방이 다였다. 심하게 아픈 이들은 지옥을 맛본다는 난감한 통증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나의 몸 상태는 낮은 고통과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다. 몸이 아프면서 마음이 약해지고 귀가 얇아졌다. 마음을 다져야겠다. 술을 끊은 지 구개월이 되었다. 그녀가 떠나간지 일년이 되었다. 나는 두문불출 다시 외딴섬에서 활자 속에 칩거했다. 그녀는 서울 태생이다. 두레박 줄을 타고 하늘에 오른 선녀처럼 그녀는 서울로 올라갔다. 어리버리하고 우유부단한 나의 언행에 그녀는 속을 많이 끓였다. 몸이 완쾌되어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이어나가기를 작은 외딴섬에서 기도올린다. 부디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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