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쥐띠해입니다. 위 이미지의 벽걸이 달력은 신영복 서화달력입니다. 근 10여년 만에 내 방을 장식했습니다. 어느 해부터 온라인 서적에서 자취를 감춘 달력을 아쉬워하며 그동안 이철수 판화달력을 걸었습니다. 2019년 연말에 선생을 기리는 〈사단법인 더불어숲〉을 방문했습니다. 반갑게 새해 달력 주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함께 동봉된 탁상달력은 사무실 새내기에게 선물했습니다. 故 신영복 선생을 공부하라는 부탁과 함께. 후원하는 생태환경 격월간지 『녹색평론』이 2008년 1 - 2(98호)부터 어깨를 겨누었습니다. 책장의 사기열전과 서승·서준식·서경식 형제의 책이 나란합니다. 일명 ‘목소리 소설’이라 불리는 노벨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이 모였습니다.
달력의 달수를 가리키는 숫자아래 〈禁酒〉를 일일이 붙였습니다. 금주 다짐은 새해 첫날부터가 아닌, 이미 8개월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번 금주 결심은 세 번째 글입니다. 2010년 『다산문학선집』을 잡고 금주를 결심했었습니다. “소가 물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목구멍에다 탁 털어놓고,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 떨어져 버린다.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한다.” 다산은 둘째아들 학연에게 당부했습니다. “입에서 딱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하라” 위 구절을 저의 다짐의 반면교사로 삼았습니다. 술을 끊고 일곱 곳의 시민·환경·인권 단체에 CMS 후원을 신청했습니다. 3년 이상 금주를 지켰습니다.
의지가 약하고 막내 기질이 강한 저는 시나브로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두 번에 걸친 큰 수술과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며 저의 결심은 흔들렸습니다. 2018년 무술년 새해 첫날부터 금주에 들어갔지만 석 달을 이기지 못하고 술독에 빠졌습니다. 2019년 5. 1 메이데이부터 11. 13. 전태일 열사 기념일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6개월을 버티자 금단 현상이 사라지며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작년 10월초 몸의 이상이 감지되었습니다. 병명에서 ‘만성’이라는 접두사와 ‘증후군’이라는 접미사는 이 땅에서 난치성 질환을 의미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속된 말로 무덤까지 지고 들어가야 할 지병입니다. 죽을병은 아니지만 불편과 고통을 몸에 달고 살아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술을 끊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전화위복으로 삼아 몸 관리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주위에서 술자리를 권하는 억지가 없어 마음은 편해졌습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돼지띠해의 5. 1 메이데이부터 시작한 충심(어머니 말씀에 따르면)으로, 제 인생의 마지막 금주 의지를 다지는 새해 첫날입니다.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죽음을 바로 보아야 남은 삶을 올바르게 살아갈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