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그려서 세상에 유명하니 / 변씨는 이로써 ‘변고양이’라 불렸는데 // 이번에 또다시 병아리 그려내니 / 가는 털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 // 어미닭은 까닭 없이 잔뜩 노해서 / 안색이 사납게 험악한 표정 // 목털은 곤두서서 고슴도치 닮았고 / 건드리면 꼬꼬댁 야단맞는다 // 쓰레기통 방앗간 돌아다니며 / 땅바닥을 샅샅이 후벼파다가 //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 척만 하고서 / 새끼 위한 마음으로 배고픔 참아내네 // 아무것도 없는데 놀라서 허둥허둥 / 올빼미 그림자 숲 끝을 지나가네 // 참으로 장하도다 자애로운 그 마음 / 하늘이 내린 사랑 그 누가 빼앗으랴 // 병아리들 어미 곁을 둘러싸고 다니는데 / 황갈색 연한 털이 예쁘기도 하여라 // 밀랍 같은 연한 부리 이제 막 여물었고 / 닭벼슬은 씻은 듯 연붉은 색깔 // 그중에 두 놈은 서로 쫓고 쫓기는데 / 어디메로 그리도 급히 가는고 // 앞선 놈 주둥이에 무엇이 매달려 / 뒷놈이 그것을 뺏으려는 것 // 새끼 둘이 한 지렁이 서로 다투어 / 두놈이 서로 물고 놓지를 않네 // 또 한 놈은 어미 등에 올라타고서 / 가려운 곳 혼자서 비비고 있는데 // 한놈만 혼자서 오지 않고서 / 채소 싹을 바야흐로 쪼고 있는 중 // 형형색색 섬세하여 진짜 닭과 똑같아 / 도도한 기상을 막을 수 없네 // 듣건대 이 그림 처음 그렸을 때 / 수탉들이 잘못 알고 법석했다오 // 그가 그린 고양이 그림 역시 / 쥐들을 혼내줄 만하였겠으리 // 예술의 지극함이 여기까지 이르다니 / 만지고 또 만져도 싫지가 않네 // 되지 못한 화가들은 산수화 그린다며 / 이리저리 휘둘러 손놀림만 거치네
그림 이미지는 포털 사이트 《Daum》에서 빌려왔다. 『다산시선』(창비, 2013)에 실린 「어미닭과 병아리」(500-503쪽)의 전문이다. 부제는 '변상벽卞尙璧의 그림을 보고' 였다. 내가 詩를 처음 접한 글은 미술사학자 故 오주석 선생의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의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를 해석한 꼭지였다. 그림은 화재(和齋) 변상벽(卞尙璧, ? ~ 1775년)이 비단에 채색한 94.4x44.3cm 크기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詩는 다산이 같은 화가의 다른 그림을 보고 지었다. 암탉과 병아리를 사실적으로 그려 낸 그림이었다. 다산이 보고 시를 읊은 그림의 병아리는 다섯마리가 보였다. 〈모계영자도〉의 병아리는 모두 열네마리였다. 오주석은 변상벽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닭 그림이 많아도 이렇듯 정감어린 작품이 또 어디 있으랴? 화가 변상벽은 어쩌면 이토록 살갑게 어머니 사랑을 그렸을까? 나는 상상한다. 이것은 닭그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느 집 정 많은 친정부모가 시집 간 딸을 위해 정성껏 주문해 보낸 그림이라면···. 그 딸아이가 늘 건강하고 병아리처럼 예쁜 자손도 많기를 바랐다면···.” 200년의 시차를 두었지만 조선말의 사상가 다산 정약용(1762 - 1826)과 미술사학자 오주석(1956 - 2005)은 변상벽의 〈어미닭과 병아리〉를 그린 다른 그림을 보며, 하나같이 어미닭의 따사로운 모정(母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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