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삶을 살다 간 우리 시대의 의인 스콧 니어링(1883 - 1983)은 말했다. “나는 총선거에서 자본주의 후보(아무리 ‘자유주의자’라 해도)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것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실질적인 참정권을 획득한 1987년 이후, 대선은 민중후보에게, 총선은 진보정당에 표를 던졌다. 막내아들의 정치성향을 쫓아 한 표를 던진 어머니가 언젠가 말씀하셨다. “어째, 이날 이때까지 니가 찍으란 사람은 한 명도 안 되냐?”
엊그제 4월 15일은 한국의 21대 총선일이었다.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 포함 180석, 야당 미래통합당은 꼼수정당 미래한국당까지 103석을 얻었다. 무소속은 5석이었다. 그외 비례정당은 강경친문 세력의 열린민주당은 3석, 국토종단 마라톤으로 선거운동(?)을 한 안철수의 국민의 당은 3석이었다. 진보정당 정의당은 지역구 1석과 비례 5석으로 모두 6석이었다. 보수언론이 보는 진영별 의석수는 범진보는 190석, 범보수는 110석이었다.
내가 보는 민주당 압승의 일등공신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코로나19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탁월한 방역조치였다. 전 세계 확진자는 20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15만 명을 돌파했다. 바람 세찬 초원에 번진 들불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서운 기세로 5대양6대주를 휩쓸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확진자는 만 명 언저리였고, 사망자는 200여 명에 불과했다. 세계 각국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한국의 열린 방역시스템을 서둘러 배워갔다. 진단키트를 서로 먼저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한국인들은 해방정국이래 처음(?)으로 자긍심이 하늘을 찔렀다.
코로나19가 전 지구를 강타하자 지구는 조용하고 맑고 깨끗해졌다. 일명 코로나의 역설이었다. 인도의 미세먼지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북부 펀잡주에서 160㎞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다. 인도 뉴델리의 밤하늘에 별이 뜨기 시작했다. ‘세계의 굴뚝’ 중국은 산업 활동이 줄자, 파란 하늘을 뜻하는 ‘베이징 블루’를 되찾았다. 뉴욕·시애틀·시카고·LA 등 미국의 대도시권은 대기가 투명할 정도로 맑아졌다. 관광객이 줄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운하에 물고기가 60년 만에 돌아왔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퓨마가, 콜롬비아 보고타에 여우가, 영국 북웨일즈 란두드노에 야생 염소떼가, 멕시코 칸쿤에 거대 악어가, 툴룸에 재규어가 나타났다. 야생동물이 인간의 영역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 최대 야생공원 크루거의 사자떼는 아스팔트 도로위에서 낮잠을 즐겼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지진소음 즉 지하철, 자동차 등 교통수단과 공장 가동이 줄자, 지구의 흔들림이 조용해졌다. 인간으로 인해 피폐해진 지구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백신이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만은 /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의 대표자였던 청음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지은 시조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마존의 오지 인디언, 절해고도 이스터섬, 북극의 에스키모까지 번져갔다. 21세기 인류는 700여 년 전 유럽 인구의 1/3의 목숨을 앗아 간 페스트(흑사병)의 공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시절이 하 수상했다. 역사적 시각으로 보면 페스트는 암흑의 중세 봉건질서를 무너뜨리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를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얼치기 생태주의자에게 코로나19 위기는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강제하는 희망으로 보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에 우왕좌왕하는 세상과 동떨어진 NLL의 섬 말도(唜島)의 쌍바위에 새날의 아침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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