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9

텃밭은 참새의 먹이창고

위 이미지를 자세히 보면 전봇대와 모과나무 사이의 보리 이삭에 참새 한 마리가 매달렸고, 한 마리는 바닥에 떨어진 보리 낱알을 쪼고 있습니다. 지난 주 휴일 현관 로비 의자에 앉아 텃밭을 내다보시던 어머니가 조용히 저를 불렀습니다. 현관문을 슬며시 밀치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에 손가락을 댔습니다. 보리 한 포기에 참새떼가 달려들어 이삭을 모두 떨구고 줄기만 남겨 놓았습니다. 녀석들은 채 여물지 않은 보리 이삭의 즙을 빨아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남은 보리 이삭에 양파 그물을 씌우며 말씀하셨습니다. “올해는 새들도 극성이구나.” 나는 참새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는 우리집 텃밭은 참새의 먹이창고입니다. 무성한 모과나무 그늘아래 쉬던 녀석들은 수시로 텃밭에 내려앉아 벌레를 사냥합니다.우리집..

'오래된 미래'를 만나다.

'96년 《녹색평론사》에서 한 권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삽화는 흑백사진이었고, 종이는 재생지로 책갈피가 껄끄러웠습니다. 스웨덴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Ancient Futures : Learning from Ladakh』(Rider, 1992)의 김종철·김태언 공동번역본이었습니다. 우리말 표제는 『오래된 미래』로 환경생태 도서의 바이블로 한국 생태운동의 상징어가 되었습니다. 책은 히말라야 고원의 유서 깊은 공동체인 라다크에 대한 생생한 현장 보고서입니다. 얼치기 생태주의자로서 내가 손꼽은, 생태환경 5대 필독서의 가장 으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위 이미지는 오랜만에 아차도 출장길에 나섰다가 운 좋게 만난 인류의 ‘오래된 미래’  모습이었습니다. 아차도는 0.54㎢의 면적에 20여 가구의 40여..

뒷집 새끼 고양이 - 19

현관문을 열자 노순이가 펄쩍 앞발을 발턱에 올려놓았습니다. 노순이는 요즘 치킨에 몸이 바짝 달았습니다. 봄맞이 집 도색과 방수를 한달 전에 마쳤습니다. 일꾼들이 페인트를 강화읍에서 조달하며 오일장표 통닭 튀김을 한 마리 사왔습니다. 반만 먹고 이리저리 체이던 닭튀김을 어머니가 가스 렌지에 찜을 했습니다. 보기 좋은 것이 먹기 좋다고. 튀김옷이 꺼멓게 변색되어 손이 가질 않았습니다. 그때 마실 온 노순이가 닭다리 한 점을 얻어먹었습니다. 맛이 들린 노순이가 집에 갈 생각을 잊고 하루 종일 어머니를 강아지처럼 쫒아 다녔습니다. 녀석은 유모차를 밀고 산책에 나서는 어머니를 앞뒤로 빙빙 돌며 종아리에 얼굴을 비벼댔습니다. “노란 놈은 여우 짓만 골라 하는구나.” 어머니 말씀이십니다. 닭다리 한 점을 얻으려는 노..

마석 모란공원에 다녀오다 - 3

300여 일만에 마석 모란공원에 발걸음을 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일이지만 비가 드문 찔레꽃 피는 절기에 찾게 됩니다. 골안개가 점차 짙어가며 주문도발 삼보12호의 출항이 지체되었습니다. 다행히 대기하던 배가 2시간 만에 움직였습니다. 폭염을 피해 섬을 찾는 피서객들이 강화 외포항에 몰려 들었습니다. 평소 기상악화로 인한 객선의 대기 시간은 1시간이었습니다. 아침 8시가 지나면 오전 1항차는 결항되었고, 오후 2시 2항차만 한 번 운행하였습니다. 밀려 든 외지인들의 악다구니가 초조함에 발만 동동 구르던 저를 살린 셈입니다. 읍내 은행에 둘러 전태일 재단과 인권운동사랑방의 자동이체 후원 계좌를 다시 살렸습니다.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을 떠난 장례 행렬은 오후 4시에 민주열사묘역에 도착했습니다. 사상최대 폭염이라..

우리집 화계(花階)

화계(花階)는 우리나라 전통 정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입니다. 왕궁, 사찰, 서원, 정원, 양반 가옥 등에서 뒤편 동산의 비탈진 면에 사고석이나 막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궁궐 후원의 으뜸은 창덕궁 낙선재 뒤뜰입니다. 창경궁 경춘전 화계와 경복궁 교태전 후원 아미산도 이에 뒤지지 않습니다. 위 이미지는 이틀 전 아침 10시경의 우리집 화계(花階) 정경입니다. 일주일 전 밤새 부슬비가 줄금거렸습니다. 강우량은 고작 3mm로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땅거죽도 채 적시지 못한 봄비였습니다. 비맛을 본 풀과 나무의 꽃과 새잎이 싱그러워 보였습니다. 절기는 곡우(穀雨)를 지나 입하(立夏)로 향하는 계절입니다. 농부들의 일손은 못자리를 꾸미느라 분망합니다. 우리집은 바다가 내려다보이..

'부름종'을 아시는가

서도(西島) 군도(群島)는 4개의 유인도와 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강화군 행정단위의 막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4개의 섬은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말도입니다. 말도는 강화 해역의 끝에 있어 끝섬 또는 말도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교통편이 불편하여 보고체계가 늦어 관아로부터 항상 꾸지람을 들었다고 합니다. 말도(唜島)는 끝 말자에 꾸짖을 질을 붙였습니다.그동안 블로그 『daebinchang』에 네 번의 말도(唜島) 글을 올렸습니다. 객선이 운항하지 못해 들고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은 「말도를 아시나요」, 3만평의 논농사로 농기계수리의 현실적 고달픔을 그린 「탈 난 쇠소(鐵牛)를 왕진(往診)가다」, 말도 쌍바위에 얽힌 유래 「말도 쌍바위는 알고 있다」 그리고 말도 선창의 기묘한 바위 생김새를 모..

분지도 슬픈 이야기

대빈창 전망대에서 아침 8시경 바라 본 분지도 정경입니다. 무인도 분지도(分芝島)는 주문도에서 분리되어 나갔다는 의미와 섬이 둘로 나누어졌다는 또다른 뜻도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분지도가 갈라진 두 개의 섬처럼 보였습니다. 1.5㎞의 거리지만 확연하게 구분되었습니다. 한쪽은 상록수로 파랗게 보였고, 다른 쪽은 낙엽을 떨 군 활엽수로 황량하게 보입니다. 숲에서 양수림(소나무 등)을 거쳐 음수림(신갈나무 등)으로 전이되는 천이의 마지막 과정으로 안정된 상태를 이룬 군집을 극상이라고 합니다. 두 개의 떼로 이루어진 분지도가 천이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자연 영상물처럼 보였습니다.한 달이 흘렀습니다. 산수(傘壽)를 한 해 남긴 할아버지가 분지도에 흔적을 남기고 실종되었습니다. 어느덧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지 ..

후투티를 다시 만나다.

나는 후투티를 지상파 방송 KBS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動物의 王國)〉에 나옴직한 먼 나라의 새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티셔츠 위에 후드 모자를 덧대어 만든 옷인 ‘후드티’를 후투티의 머리에 쓴 관 모양의 깃털에서 유래한 옷이라고 제멋대로 연상했다. 전적으로 후투티를 알게 된 것은 송규명의 체험적 생태수필 『후투티를 기다리며』라는 산문집을 통해서였다.저자는 후미진 아파트의 놀이터에 찾아 온 후투티 한 쌍을 보며 자신의 삶터를 행복해했다. 책에 실린 삽화를 보고 나는 다시 착각에 빠졌다. 머리에 관을 쓴 참새만한 새가 주문도 봉구산 관목 덤불에서 떼로 몰려다니며 까불었다. 포스팅한 글에 달린 댓글은 후투티의 새끼가 아닐까하고 궁금증과 의문을 나타냈다. 문제는 새의 덩치였다. 후투티의 몸길..

대빈창해변 가는 언덕위 하얀집

외포항에서 오전 9시 10분에 출항한 1항차 객선이 주문도에 닿는 시간은 대략 10시 40분경입니다. 주문도는 조선 후기 임경업 장군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면서 한양의 국왕께 하직인사 글을 올려 주문도(奏文島)라 불렸는데, 지금은 주문도(注文島)로 변했습니다. 배 닿는 시간은 물때에 따라 10여분 경 들쑥날쑥 합니다. 느리 선창에 내린 외지인들의 발걸음은 대부분 대빈창 해변으로 향합니다. ‘느리’는 산부리가 길게 뻗어나가 늘어진 곶(串)이 있는 주문도 선창의 자연부락 마을 입니다. 대빈창(待賓倉)은 옛날 중국 교역의 중간기항지로 중국사신과 상인 등을 영접하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입니다. 느리 선창에서 대빈창 해변으로 가는 길은 도로명 주소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왼쪽은 월파벽 너머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대빈창 해변에 열목어가 헤엄쳤다.

서해의 면적은 40만4,000㎢입니다. 길이는 남북 1,000㎞이고, 동서는 700㎞입니다. 수심은 20 ~ 80m 정도로 최대수심은 103m이고, 평균수심은 44m입니다. 황하(黃河)에 의해 운반된 황토로 바닷물이 항상 누렇게 흐려 있어 황해라고 부릅니다. 신생대 제4기 최후 빙하기 때 서해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100m이상 낮아 중국대륙과 연결된 평탄지형 이었습니다. 신생대 제4기는 홍적세(1만 ~ 160만년 전)와 충적세(현재 ~ 1만년 전)로 나누어집니다. 지구의 기온이 차츰 따뜻해지면서 해수면이 올라가 바다가 되었습니다. 먼 옛날, 강화도에 딸린 서해의 섬들은 빙하기 때 평탄한 지형에 돌출된 산줄기였습니다. 빙하가 녹으면서 계곡과 낮은 지역은 바닷물에 잠기고, 봉우리와 능선만 물 위로 고개를 내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