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9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20

14일(토) - 8물, 939mm, 06:03 / 15일(일) - 9물, 947mm, 06:51 / 16일(월) - 10물, 938mm, 07:36 단위농협 달력에 기록된 강화도 외포리 기준 물때표입니다. 연중 물이 가장 많이 미는 유두사리입니다. 사리 물때는 7물을 기준으로 삼지만, 실제 물이 가장 많이 미는 날은 9물입니다. 먼동이 터오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간편한 차림으로 선창에 나갔습니다. 다행히 바람이 잤습니다. 선창으로 향하는 도로가 월파벽에 바닷물이 찰랑거렸습니다. 바람이라도 일었으면 선창과 해안도로는 바닷물이 넘쳤겠지요. 6년 전 유두사리 때 저는 자연의 힘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그날도 해안가 침수가 염려되어 섬을 한 바퀴 돌고 있었습니다. 대빈창 해변의 제방길 옹벽이 산더미같은 파..

대빈창의 벽화

30여년 지속되었던 디아스(Diaz. p)의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1910년 폭발한 멕시코 혁명. 1921년부터 시작된 멕시코 벽화운동의 3대 대표 화가를 떠올렸습니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ar, 1866 ~ 1957),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1896 ~ 1974), 호세 클레멘테 오로츠코(Jose Clemente Orozco, 1883 ~ 1949) 입니다. 시케이로스는 정치적 신념이 강한 현실참여주의자로 수차례의 망명과 옥고를 치렀습니다. 대표작은 「새 민주주의」로 투쟁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표현했습니다. 리베라의 벽화는 혁명은 세계에 원초적 질서와 평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해방된 땅과 인간에 의해 조절되는 자연의 힘」에 잘 드러..

독살을 아시는가

주문도발 오후 2시배가 아차도를 들러 볼음도에서 사람과 차량을 싣고 강화도 외포리항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시간은 대략 2시 20분경 안팎입니다. 볼음도 선창의 부속 건물들이 강렬한 햇살아래 하얗게 바랬습니다. 아차도에서 수리봉을 징검다리삼아 볼음도로 이어지는 송전탑이 키를 늘였습니다. 볼음도는 짙은 신록의 음영에 휩싸여 적막한 기운마저 감돌았습니다. 물때는 감(물이 완전히 빠져 30분 정도 멈춘 시점. 물이 완전히 차 30분 정도 멈춘 시점은 ‘참’)에서 다시 밀기 시작했습니다. 섬사람들은 ‘물이 돌아섰다’고 말합니다. 볼음도를 떠나는 삼보12호를 피사체로 잡은 지점은 주문도 구라탕입니다. 구라탕의 어원은 굴+바탕으로 주문도 주민들의 겨울한철 소득원인 자연산 굴 채취장입니다. 갯벌에 어지럽게 널린..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9

토진이가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오랜만에 길가에 나와 마음껏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들고양이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지 모르겠습니다. 토진이 아지트에 얼씬거리던 검은 바탕에 흰 반점의 고양이와 노란 바탕에 줄 무늬 녀석이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영리한 토진이가 놈들의 행동반경을 미리 파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토진이가 나이가 들수록 조심성만 늘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던 녀석이 뒤돌아서 산기슭으로 깡총깡총 뛰어 달아납니다. 녀석에게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지 경계심을 풀고, 여린 새싹에 코를 박고 폭풍흡입 중입니다. 오랜만에 토진이의 선명한 이미지를 건졌습니다. 토진이가 만 다섯 살이 넘었습니다. 토진이의 귀토야생(歸兎野生)은 한마..

볼음도의 이팝나무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 열여덟 살 착한 새 며느리가 살았습니다. 고된 시집살이를 묵묵히 순종하였지만 고약한 시어머니는 허구한 날 트집을 잡고 구박을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며느리의 고운 심성에 동정과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큰 제사가 돌아와 며느리는 난생 처음 쌀밥을 짓게 되었습니다. 시집와서 잡곡밥만 지었던 며느리는 조상들께 드리는 제삿밥 뜸이 잘 들었나 밥알 몇 알을 떠먹어 보았습니다. 그때 부엌에 들어 온 시어머니가 제사에 쓸 메밥에 며느리가 먼저 손을 대었다고 갖은 학대를 했습니다. 며느리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뒷산에 올라 목을 매었습니다. 이듬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더니 흰 꽃을 가득 피워 냈습니다. 그 후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불렀습니..

마석 모란공원에 다녀오다 - 2

오월 마지막 주말. 2년 만에 마석 모란공원에 발걸음을 했습니다. 절기는 바야흐로 이 땅의 산하를 울창한 신록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의 열사 묘역도 녹음에 둘러싸여 짙은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마음이 무거웠나 봅니다. 전날 저녁 몇 잔 기울인 술에 몸이 늘어졌습니다.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공원 앞 꽃집에서 국화 열 송이를 준비했습니다. 세로로 쓰인 신영복 선생 특유의 연대체 글씨. 가로로 쓰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비석. 〈민주 열사 추모비〉 두 비가 맞아 주었습니다. 전태일(1948 - 1970) / 이소선(1929 - 2011) 노동자의 어머니 /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1918 - 1994)·박용길 장로(1919 - 2011) / 박종철(1965..

대빈창 다랑구지의 무논

이미지는 소만(小滿)을 사나흘 앞둔 물을 얹은 대빈창 다랑구지입니다. 소만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로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듭니다. 햇빛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주문도의 소만은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되는 연중 가장 바쁜 절기입니다. 고맙게 사흘 내내 비님이 오셨습니다. 저수지가 없어 물이 귀한 대빈창 다랑구지를 흠뻑 적셨습니다. 사흘간 강우량은 72mm나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우리나라 연평균 강우량은 1200mm 입니다. 근래 서해의 작은 외딴섬에 내리는 연중 강우량은 500mm 안팎이었습니다. 벼농사는 한자로 수도작(水稻作)이라 할 만큼 물을 많이 쓰는 농사입니다. 대빈창 다랑구지는 저수지가 없습니다. 장마철 차츰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제방 밑 논부터 물이..

뒷집 새끼 고양이 - 15

노순이가 세 배 째 새끼를 낳았습니다. 첫 배는 뒷집 광의 종이박스에 낳았지만, 도둑고양이한테 해코지를 당해 모두 잃었습니다. 두 배 새끼는 감나무집 고구마 밭에 몰래 낳아 젓을 먹였습니다. 첫 배와 두 배 모두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세 배 째는 자기를 닮은 새끼 네 마리를 낳았습니다. 두 마리는 흰 바탕에 노란 무늬가 얼룩졌고, 두 마리는 어미를 꼭 빼 닮았습니다. 노순이의 근심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첫 배와 두 배 새끼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새끼를 낳고 두문불출하던 노순이가 우리집에 마실을 왔습니다. 야 ~ ~ 옹! 소리에 텃밭에서 김을 매던 어머니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노순이가 어머니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반가움에 개사료를 플라스틱 그릇..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8

야생 진드기는 알에서 부화한 후에 유충, 약충, 성충의 3단계로 성장합니다. 각 단계는 일 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유충이 약충이 되기 전, 약충이 성충이 되기 전, 성충이 알을 낳기 전, 일생에서 세 번은 반드시 온혈동물의 피를 흡입합니다. 야생 진드기의 세 번의 숙주(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는 모두 포유동물입니다. 나무나 풀에서 살다, 온혈 동물의 열을 감지하면 튀어 올라서 숙주에 달라붙습니다. 숙주의 피부가 노출된 곳, 물만한 곳을 찾아 피부를 뚫고 주둥이를 살 속으로 삽입합니다. 물어도 아프지 않아 숙주는 진드기가 물었다는 사실을 며칠씩 모른다고 합니다. 북서향이라 풀이 늦게 돋는 토진이의 아지트에 벌써 진드기가 나타났습니다. 진드기는 본능적으로 토진이의 몸을 타고 올라가 뒷목 중앙..

수선화가 피어나다.

봄의 마지막 절기로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는 곡우(穀雨)가 내일모레입니다. 얌전하게 오시는 봄비를 맞으며 무리지은 수선화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수선화(水仙花)는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물속에 빠져 죽은 자리에 핀 꽃이라는 전설을 떠올립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란 세대에게 수선화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나의 눈에 수선화가 잡힌 것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완당평전 2』(학고재, 2002) 480쪽의 사진은 제주도 대정 추사 적거지 돌담 밑의 피어나기 시작한 수선화를 담았습니다. 추사는 8년 3개월을 제주 대정에서 위리안치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보기 어려워 귀물(貴物) 대접받는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