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수선화가 피어나다.

대빈창 2018. 4. 18. 05:55

 

 

 

봄의 마지막 절기로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는 곡우(穀雨)가 내일모레입니다. 얌전하게 오시는 봄비를 맞으며 무리지은 수선화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수선화(水仙花)는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물속에 빠져 죽은 자리에 핀 꽃이라는 전설을 떠올립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란 세대에게 수선화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나의 눈에 수선화가 잡힌 것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완당평전 2』(학고재, 2002) 480쪽의 사진은 제주도 대정 추사 적거지 돌담 밑의 피어나기 시작한 수선화를 담았습니다. 추사는 8년 3개월을 제주 대정에서 위리안치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보기 어려워 귀물(貴物) 대접받는 수선화가 제주도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그 귀한 꽃이 너무 흔해, 제주 사람들이 소나 말의 먹이로 삼고, 보리를 갈 때 다 파버리는 것을 보고 추사는 안타까웠습니다. 『완당선생전집』에 실린 「수선화」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一點冬心朶朶圓

그윽하고 담담하고 냉철하고 빼어났네.           品於幽澹冷

매화가 기품이 높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梅高猶未離庭砌

맑은 물에서 참으로 해탈한 신선을 보았네.      淸水眞看解脫仙

 

추사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보다 수선화를 윗길로 치며 해탈신선이라 극찬했습니다. 추사는 절해고도 귀양살이에서 수선화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았는지 모릅니다. 24세 때 중국에 가 처음 본 꽃에 반해 서재 한쪽에 수선화 화분을 두고 즐겼습니다.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에도 수선화가 만발했겠지요. 수선화는 물에 떠있는 신선이라는 뜻입니다. 눈 속에서 꽃을 피워 설중화(雪中花)라고도 합니다. 제주에서 수선화는 금잔옥대(金盞玉臺)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얀색 꽃받침과 그 안의 노란 꽃망울이 옥 받침 위 금잔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위 이미지의 수선화는 꽃받침과 꽃망울이 모두 금색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꽃받침이 하얗게 탈색되면서 말그대로 금잔옥대(金盞玉臺)로 변해갑니다.

절해고도에 갇힌 추사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수선화를 눈 가까이 두고 싶었습니다. 책의 도판으로 보았던 수선화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너 해 전 NLL의 섬 말도에서 하루 묵게 되었습니다. 무리를 이룬 노란꽃들이 텃밭과 길가를 경계 지었습니다. 분명 수선화였습니다. 수선화는 씨를 맺지 못하여 비늘줄기로 번식합니다. 그해 가을 비늘줄기를 한 움큼 얻었습니다.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고갯길 우리집 뒤울안의 수선화가 장합니다. 주문도 집집 화단마다 수선화가 번졌습니다. 주문도 수선화 알뿌리의 엄마는 우리집 뒤울안 수선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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