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9

풍경은 찰나의 이미지다.

“풍경은 연약하다. 풍경은 순간으로만 있다. 그것은 덧없이 사라진다. 시시각각 빛은 변화하는 것이다. 풍경은 언제나 단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무이한 것이다.” 풍경의 시인 허만하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의 한 구절입니다. 위 이미지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관공서 직원들의 월요일 출근은 행정선이 외포리에서 출항해 주문도를 거쳐 볼음도에 닿습니다. 비소식이 있습니다. 행정선을 이용해 출장에 나섰습니다. 볼음도 선창에 닿으니 8시 30분입니다. 일을 마치고 주문도행 아침 객선을 이용하려 선창 매표소에서 10시에 표를 끊었습니다. 더위를 식힌 외지인들이 섬을 떠나느라 선창은 북새통이었습니다. 그때 보기드문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0시 30분 볼음도 선창 앞바다에서 만난 풍경입니다..

서도의 도(島)는 섬이다.

장마가 지나가자 무더운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새벽의 푸른 기운을 극성스러운 매미 울음이 벗겨냅니다. 봉구산을 넘어 온 해가 이른 아침부터 염천을 예고하듯 지글지글 끓었습니다. 매미울음이 온 천지를 덮고 귓속까지 들어찼습니다. 더위에 지친 도시인들이 너도나도 섬을 찾습니다. 해운사는 배를 늘였습니다. 주문도에 정박하며 하루 두 번 뭍을 왕복하던 삼보12호에 이어 삼보2호가 추가 투입되었습니다. 삼보2호는 외포항에서 아침 7시 30분에 출항합니다. 주문도에 9시 30분에 닿습니다. 뭍을 향해 10시에 주문도를 떠납니다. 주민들의 뭍 나들이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배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 혼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올해 서도(西島) 군도(群島)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를 찾는 외지인들이 부쩍 늘었습니다.위 이미지..

뒷집 새끼 고양이 - 9

주인집인 뒷집에서 아침저녁 두 끼 요기만 채우고 낮 시간을 매일 우리집에서 소일하는 고양이들입니다. 시계방향으로 수놈 재순이, 암놈 검돌이와 노순이입니다. 재순이는 슬라브 옥상을 오르는 계단 입구에 길게 누워 낮잠을 즐깁니다. 검돌이는 석축 위 감나무 그늘아래 몸을 사렸습니다. 노순이는 빨래건조대 고정용으로 흙이 담긴 스티로폼 박스에 들어앉았습니다. 재순이는 고집이 세지만 넉살이 좋습니다. 어머니가 장난으로 아무리 못살게 굴어도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입니다. 사발 지팡이로 짓궂게 몸을 내리 눌러도 야 ~ ~ 옹! 귀찮다는 시늉만 할 뿐 몸을 빼지 않습니다. 재순이는 식탐이 강합니다. 어머니가 부엌 샛문을 통해 먹을 것을 내놓기 전에는 자리를 옮기지 않습니다. 녀석 때문에 날이 더워도 부엌 샛문을 닫은 ..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5

생수통, 뜸, 스티로폼 부력, 캔 맥주, 맥주 페트병, 소주병, 막걸리 통, 부탄가스통, 스포츠음료 병, 캔 커피, 지게차용 깔판, 석유 들통, 간장 말통, 콜라병, 폐타이어, 튜브, 탄산음료 병, 운동화, 슬리퍼, 옷, 나무가구, 파레 더미······. 백사장을 덮은 파레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말라 갑니다. 멀리 솔숲을 빠져나와 제방으로 꺾어드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먼동이 터오기 전 골안개가 빠른 속도로 밀려들었습니다. 안개 군단은 분지도를 눈 깜짝할 사이에 포위했습니다. 이 시각. 4년 째 제가 터 잡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사람은 그이 뿐입니다. 제게 토진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사람입니다. 폭우나 폭설로 길이 막히지 않는 이상 그이는 아침저녁으로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저와 눈을 맞추고 입가에 엷은..

뒷집 새끼 고양이 - 8

저녁 산책을 마치고 현관문을 밀쳤습니다. 어머니와 뒷집 형수가 마루턱에서 완두콩을 까고 계셨습니다. 형수가 뒷춤에서 간난 고양이를 꺼내 내밀었습니다. 마루가 미끄러운지 새끼는 자꾸 비틀거렸습니다. 이미지의 간난 고양이는 노순이 새끼입니다. 노순이는 달포 전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몸이 허약한 어미 때문인지 두 마리의 새끼는 눈도 못 뜬 채 죽었습니다. 새끼는 아빠 재순이를 닮았습니다. 검돌이도 한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뒷집 고양이는 이제 다섯 마리가 되었습니다. 노순이는 뒷집 보일러실 종이박스에 새끼를 낳았습니다. 뒷집 형수는 재순이가 해꼬지를 할까, 노순이가 밖에 나오면 재빨리 미닫이를 닫았습니다. 우리집에 놀러 온 노순이가 어머니께 조릅니다. 어머니는 보행보조기를 끌고 나섭니다. 노순이가..

대빈창 진객을 이제 알아보다 - 2

너희들은 모르지 / 우리가 얼마만큼 / 높이 날으는지 (······) 도요새 도요새 / 그 몸은 비록작지만 / 도요새 도요새 / 가장 높이 꿈꾸는 새 정광태의 노래 「도요새의 비밀」의 일부분입니다. 놀랍게도 암컷 흑꼬리도요 한 마리가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1만1500㎞를 쉬지 않고 1주일 만에 날아간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3년 전 대빈창 진객으로 천연기념물 제326호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검은머리물떼새(oystercathcer)를 소개했습니다. 어느 날 대빈창 해변의 저녁 산책에서 도요새를 만났습니다. 도요새(Charadriiformes)는 도요과에 딸린 새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종류가 많아 우리나라를 찾는 녀석들도 40여 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도요새는 봄이 되면 남쪽 나라에서 날아와..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4

왼쪽 이미지가 토진이가 사는 터에 이르는 제방 진입로입니다. 느리 선착장에서 강화도를 하루 두 번 오가는 카페리에서 내립니다. 서도면사무소, 보건지소, 파출소가 자리 잡은 느리 마을입니다. 바다를 보며 일렬로 늘어 선 선창 집들을 지나 하얀쪽배 펜션을 오른편에 끼고 100여m 걷다 다시 우회전하면 야트막한 고개가 나타납니다. 고개를 내려서면 다랑구지 들녘입니다. 들녘 가운데 농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면 멀리 해송 숲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른쪽은 다랑구지를 바라보는 대빈창 마을집들이 일렬로 늘어섰고, 왼쪽은 낮은 구릉이 바다를 가렸습니다. 만조시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서해의 수평선을 볼 수 있습니다. 식재 된 해당화 군락지를 지나면 화장실, 수돗가, 쓰레기장이 설치된 대빈창 해변 야영장입니다. 폭이 좁고 긴 ..

간이 배는 풍경

숭어의 회 맛을 표현하는 ‘겨울엔 천국, 여름엔 지옥의 맛’이라는 말은 그럴듯 합니다. 숭어는 추운 계절에 회 맛이 뛰어난 바닷고기입니다. 숭어회 맛은 복숭아꽃이 필 때 절정에 달합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숭어회는 물러지고 물이 흘러 식감이 떨어집니다. 초보 딱지를 뗀 회 맛을 안다는 이도 헤매는 물고기가 숭어입니다. 우리나라의 숭어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숭어는 눈이 검고 날렵한 제비꼬리를 갖고 있습니다. 가숭어는 눈이 노랗고 일자에 가까운 꼬리를 갖고 있습니다. 경기와 남도에서 두 바닷고기를 부르는 명칭이 반대입니다. 경기의 숭어는 남도에서 가숭어로, 남도의 숭어는 경기에서 가숭어로 불립니다. 제가 사는 서도(西島) 군도(群島)에서 숭어는 가숭어로 원지라 불립니다. 원지는 등줄기가 시커멓고 살에..

해변의 지게

두 개의 가지 뻗은 장나무를 위는 좁고 아래는 벌어지게 나란히 세웁니다. 그 사이에 세장을 가로질러 사개를 맞추고 아래위로 질빵을 맸습니다. 100년 전 서양 사람들은 지게를 보고 경이로움에 찬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인용 운송 수단을 격찬하였습니다. 그들은 어깨 위에 걸친 장대의 양쪽에 짐을 반으로 나누어 걸고 운반했습니다. 조선의 지게꾼은 190kg의 짐을 거뜬히 혼자 힘으로 날랐습니다. 사람이 등에 지고 위에 짐을 실어 나르는 지게는 한국 고유의 운반 기구입니다. 지게가 작대기에 기대어 바닷가 모래밭에 서 있습니다. 지게 주인은 물때를 알고 있습니다. 물때는 조금입니다. 만조의 바닷물 높이를 알고 있습니다. 바닷물이 지게를 떠메고 나갈 염려는 없습니다. 사리 물때가 돌아오면 지..

조개골과 대빈창은 닮았다.

주문도는 서도에서 가장 높은 봉구산이 섬 중앙에 자리 잡았습니다. 볼음도는 높지않은 구릉들이 섬을 에워쌓았습니다. 지형이 주문도는 남성을, 볼음도는 여성이 떠올려집니다. 주문도의 대빈창은 바다를 향해 툭 터진 반면 볼음도의 조개골 해변은 E자 형국으로 북유럽의 피요르드를 닮았습니다. 두 섬은 다행히 대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볼음도저수지 제방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4호로 수령이 800여년이나 되었습니다. 주문도의 서도중앙교회는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4호로 100년 전 한옥양식으로 지어진 기독교 초창기 건축물입니다. 이미지는 황해(黃海)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바닷물이 코발트색입니다. 분명 물때가 조금입니다. 주문도 대빈창과 볼음도 조개골 해변은 서향으로 앉았습니다.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