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8

뒷집 새끼 고양이 - 2

노순이가 방충망이 뚫어져라 안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뒤늦게 나타난 재순이가 출입문 턱에 앞발을 올려놨습니다. 산책에서 돌아오니 아침 7시. 두문불출하던 녀석들이 어쩐 일로 우리 집에 마실을 왔을까요. 분명 뒷집 사람들이 출타하여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봉구산 자락 옛길에 올라서자 붙임성 좋은 노순이가 나타났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입이 짧은 노순이가 오늘따라 식히려고 내놓은 진돌이 밥에 매달려 억지로 떼어놓으셨다고 합니다. 진돌이 밥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어머니는 노순이의 식탐에 겁이 났습니다. 근 열흘 전 이웃집 나드리를 온 녀석들에게 어머니는 진돌이 끼니로 장만한 우럭지지미를 내주었습니다. 조그만 녀석들이 배가 빵빵하도록 먹어 대견했는데 그만 탈이 났습니다. 두 녀석이 설사를 시작하더..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1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여자를 상아로 조각하여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여인상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런 여인과 결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에 아프로디테가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고, 피그말리온은 인간이 된 그 여인상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Daum 백과사전에서) 이에 무언가에 대한 사람의 믿음, 기대, 예측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을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라고 합니다. 아침 산책에서 위 이미지를 건져 집으로 돌아오며 떠올린 그리스 신화입니다. 토진이가 조각상처럼 사석더미위에 그럴듯하게 포즈를 잡았습니다. “나 요기 올라왔으니까, 사진 찍어 줘.” 사진을 보신 어머니의 말씀이십니다. 어머니는 주변 짐승들인 진돌이,..

뒷집 새끼 고양이

뒷집 새끼고양이 자매 재순이와 노순이입니다. 산책을 나서는데 녀석들이 뒷집 울안에서 놉니다. 녀석들은 배나무에서 즐겨 놀았습니다. 자매를 안아 배나무에 올려놓고 손전화 사진을 찍었습니다. 뒷집 형수를 따라 우리 집에 마실 온 녀석들은 이름 없이 나비야! 나비야! 하고 불렸습니다. 녀석들은 강아지처럼 발길에 채일 정도로 형수를 따라 다닙니다. 나는 즉석에서 녀석들의 털빛을 따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잿빛 놈은 재순이, 노란 털빛 녀석은 노순이입니다. 덩치가 조금 큰 재순이가 언니로 짐작됩니다. 녀석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달합니다. 두 손으로 안으면 어서 내려달라고 앞발을 버르적거립니다. 노순이는 조용하고 얌전합니다. 가슴에 안아주면 가만히 폭 안겨옵니다. 노순이는 항상 재순이 뒤꽁무니를 쫒아 다닙니다. 형수..

진돌이는 순하다.

날이 더워지자 진돌이는 밤잠을 밖에서 잡니다. 낮은 그늘지는 방에 들어가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눈을 감습니다. 경사면을 밀고 앉힌 창고 벽은 시원합니다. 밤새 폭우가 퍼붓다 주춤한 새벽 고라니가 다녀가셨습니다. 물먹은 땅콩 밭에 되새김질 동물의 발자국이 또렷합니다. 창고에서 가장 먼 두둑 끄트머리 땅콩 잎이 뜯겼습니다. 진돌이는 창고 한 칸에 방을 들였습니다. 곤한 새벽잠에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진돌이를 놀립니다. “진돌이는 바보구나. 고라니가 왔다 간지 모르고 잠만 처자고.” 진돌이는 텃밭 작물을 넘보는 짐승들에 무신경합니다. 멧비둘기들이 싹튼 콩의 떡잎을 모조리 따먹어도 본체만체 입니다. 텃밭지기 임무를 망각한 진돌이입니다. 진돌이는 너무 순한지 모르겠습니다. 목에 이어진 개줄은 강아지용..

후투티를 기다리며 - 2

우리 집 뒤울안과 이어진 봉구산의 관목 덤불에서 폴짝폴짝 뛰는 새들은 머리에 관을 썼다. 표지 그림을 보고 나는 손뼉을 쳤다. 서둘러 백과사전의 후투티를 검색했다. 우리나라 중부지방에 주로 서식하는 여름철새로 머리와 깃털이 인디언의 장식처럼 펼쳐졌고, 머리 꼭대기 장식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후투티의 덩치였다. 몸길이 약 28㎝, 날개길이 약 15㎝ 였다. 내가 본 새들은 참새만 했다. 그럼 후투티를 닳은 녀석들은? 2015년 1월에 올린 『후투티를 기다리며』 리뷰의 마무리 구절입니다. 『우리 새 백 가지』를 펼쳤습니다. 녀석들은 노랑턱멧새입니다. 후투티보다 작은 놈들은 머리에 뿔 모양의 장식깃을 단 우리나라의 흔한 텃새입니다. 작년 여름 나는 진짜 후투티를 보았습니다. 행운입니다. 폭양에..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0

우리 세대의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누구나 토끼를 키웠습니다. 덩치가 크다고 할 수 없는 녀석들은 끊임없이, 쉴 새 없이 먹었습니다. 토끼장에 풀이 떨어지지 않게 꼬맹이들은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겨우내 콩깍지로 연명하던 토끼에게 이른 봄 새 쑥부터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까지. 아카시 잎이 퍼져서야 한시름 놓았습니다. 토끼의 소변 지린내는 얼마나 지독하던가요. 토끼는 물을 두려워해 장마철이 돌아오면 토끼장에 비 한 방울 들이치지 못하게 얼마나 안달복달 하였던가요. 토진이를 지켜보며 토끼에 대한 그릇된 상식 몇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토끼에게 물은 독약이 아니었습니다. 밤새 폭우가 퍼부은 이른 새벽 토진이는 이마에 물기가 흥건한 채 풀을 뜯었습니다. 한 술 더 떠 토진이는 길에 고인 물웅덩이에 입을 대..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9

오빠 - 토순이 - 토돌이 - 절름발이. “녀석들이 하늘이 부여한 생을 온전히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퀴토야생기(歸兎野生記)- 8』에서 한 말입니다. 토진이는 팔자가 사나운지 모르겠습니다. 외톨이 팔자를 타고 난 것일까요. 토진이의 곁을 떠난 친구들입니다. 한 우리에 살던 오빠가 죽자 토진이는 대빈창 해변에 방생(?) 되었습니다. 토진이는 야생의 겨울을 두 번 이겨 낸 세 살 박이 애완토끼입니다. 작년 5월 1일 집토끼 남매 토돌이와 토순이를 외로운 토진이의 식구로 들였습니다. 암컷 토순이는 야생 진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희생당했습니다. 대빈창 해변이 비좁다고 천방지축이던 토돌이는 해변을 벗어나 산중생활을 영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새해 초 산책길 나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소나무 숲으로 달아나던 녀석..

저어새가 있는 풍경

볼음도의 밭바위뜰 무논에 저어새 세 마리가 주걱 같은 부리로 곱게 써레질된 논바닥을 연신 훑고 있습니다. 밭바위뜰은 볼음도에서 마을과 동떨어진 인적 드문 들녘입니다. 저어새가 있는 풍경은 생태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세계적으로 저어새의 개체 수는 3,200여 마리 뿐입니다. 천연기념물 205호이며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인 저어새를 논에서 볼 수 있는 섬에 삶터를 꾸렸다는 자부심이 생의 큰 기쁨입니다. 볼음도 주변의 강화갯벌은 저어새 번식지로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된 생태자원입니다. 면적은 여의도의 53배나 됩니다. 서해 5도의 하나인 우도의 이웃 무인도인 석도와 비도가 저어새의 번식지입니다. NLL에 자리 잡은 무인도는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저어새의 입장에서 보면 천만다행입..

신혼 참새의 보금자리 - 2

『신혼 참새의 보금자리』를 올린 지 3년 2개월이 흘렀습니다. 수돗가 낙숫물 홈통을 감싼 덧처마 샌드위치 조립식 판넬의 스티로폼 알갱이를 파내고 보금자리를 꾸민 신혼 참새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참새가 새끼를 부화시켜 떠난 한여름 저는 시멘트벽돌로 벌어진 판넬 틈새를 막았습니다. 어머니의 성화도 계셨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덧처마 판넬이 배겨나지 못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 후 참새들은 판넬 속을 파내 집을 짓는 난공사를 포기하고 반영구적인 집터를 장만했습니다. 우리 집은 대빈창 해변을 향하는 고개 정상에 자리 잡았습니다. 길을 따라 전봇대가 늘어섰습니다. 언덕을 따라 올라 온 전봇대 하나가 마당 입구에 서 있습니다. 키가 크고 몸통이 튼실한 신형 전봇대입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자리를 지키던 키작고 몸피도..

물에서 걷는 오리

제목을 보고 혹시 ‘바실리스크 오리’가 아닐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바실리스크도마뱀은 일명 예수도마뱀으로 물 위를 달릴 수 있습니다. 중앙아메리카 코스타리카에 서식하는 도마뱀으로 0.25초 만에 다섯 걸음을 떼는 순발력으로 물 위를 달린다고 합니다. 위 이미지에서 오리 한 놈은 물 위에 떠있고, 한 놈은 막 이륙하여 힘차게 날개짓을 합니다. 흰뺨검둥오리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눈에 뜨이는 텃새입니다. 대빈창 다랑구지 들녘 텅 빈 겨울 벌판에서 녀석들은 사촌격인 천둥오리와 무리를 이룹니다. 날이 따듯해지면 천둥오리는 북녘으로 날아가지만 녀석들은 무논을 거쳐 모내기가 끝난 논에서 물장구질에 여념이 없습니다. 벼가 자라 마음대로 물놀이를 할 수 없을 즈음 녀석들은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