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누구나 토끼를 키웠습니다. 덩치가 크다고 할 수 없는 녀석들은 끊임없이, 쉴 새 없이 먹었습니다. 토끼장에 풀이 떨어지지 않게 꼬맹이들은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겨우내 콩깍지로 연명하던 토끼에게 이른 봄 새 쑥부터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까지. 아카시 잎이 퍼져서야 한시름 놓았습니다. 토끼의 소변 지린내는 얼마나 지독하던가요. 토끼는 물을 두려워해 장마철이 돌아오면 토끼장에 비 한 방울 들이치지 못하게 얼마나 안달복달 하였던가요.
토진이를 지켜보며 토끼에 대한 그릇된 상식 몇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토끼에게 물은 독약이 아니었습니다. 밤새 폭우가 퍼부은 이른 새벽 토진이는 이마에 물기가 흥건한 채 풀을 뜯었습니다. 한 술 더 떠 토진이는 길에 고인 물웅덩이에 입을 대고 물을 들이켰습니다. 토끼는 풀만 뜯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외로 먹을거리가 다양했습니다. 야생초의 열매도 아주 좋아합니다. 오른쪽 이미지의 토진이가 망을 보는 미어캣처럼 두발로 섰습니다. 녀석은 지금 메귀리의 열매를 탐하고 있습니다. 영리한 토진이는 키가 큰 메귀리의 줄기 중간을 뾰족한 앞니로 끊습니다. 꺾여 땅에 떨어진 줄기를 토진이는 알곡부터 천천히 씹어 먹습니다. 메귀리는 길가에 흔한 2년생 초본식물로 종자로 번식합니다. 메귀리는 야생귀리로 알려졌습니다. 흉년에 귀리대신 먹기도 하였습니다. 귀리는 단백질·지질(脂質)의 함량이 높습니다.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도 쌀과 비슷하여 곡류 가운데 영양가가 높은 편입니다. 사람이 귀리를 먹듯 토진이는 지금 메귀리를 먹고 있습니다.
영양가 높은 메귀리에 식욕이 돋았는지 토진이가 아카시 잎사귀를 얼굴 앞에 흔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왼편 이미지의 토진이가 길게 기지개를 켭니다. 아침저녁으로 3년 째 낯을 익힌 토진이는 이제 친근감을 나타냅니다. 더운 요즘 흙바닥에 배를 깔고 길게 누워 체온을 식히다 내가 다가서면 게으르게 몸을 길게 늘입니다. 토진이에게 나는 덩치 큰 짐승이 아니라 매일 마주치는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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