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진돌이는 순하다.

대빈창 2016. 7. 15. 07:00

 

 

 

 

날이 더워지자 진돌이는 밤잠을 밖에서 잡니다. 낮은 그늘지는 방에 들어가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눈을 감습니다. 경사면을 밀고 앉힌 창고 벽은  시원합니다. 밤새 폭우가 퍼붓다 주춤한 새벽 고라니가 다녀가셨습니다. 물먹은 땅콩 밭에 되새김질 동물의 발자국이 또렷합니다. 창고에서 가장 먼 두둑 끄트머리 땅콩 잎이 뜯겼습니다. 진돌이는 창고 한 칸에 방을 들였습니다. 곤한 새벽잠에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진돌이를 놀립니다.

 

“진돌이는 바보구나. 고라니가 왔다 간지 모르고 잠만 처자고.”

 

진돌이는 텃밭 작물을 넘보는 짐승들에 무신경합니다. 멧비둘기들이 싹튼 콩의 떡잎을 모조리 따먹어도 본체만체 입니다. 텃밭지기 임무를 망각한 진돌이입니다. 진돌이는 너무 순한지 모르겠습니다. 목에 이어진 개줄은 강아지용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진돌이는 어릴 적 목줄을 여적 메고 있습니다. 진돌이는 만 세 살 박이 진돗개 트기입니다. 진돌이는 밥을 절대 한 번에 먹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양만 먹고 하루 이틀에 걸쳐 나눠 먹습니다. 진돌이가 좋아하는 뼈다귀를 그릇에 수북이 담아도 녀석은 배가 차면 뒤로 물러설 줄 압니다. 사료를 줘도 매한가지입니다. 딸기포장용 플라스틱 그릇이나 재떨이에 사료를 담아도 녀석은 밥그릇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진돌이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사이 참새들이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밥알을 쪼아 먹습니다.

진돌이는 장난을 칠 줄 모릅니다. 우두커니 앉아 있다 식구가 텃밭에 내려서면 앞발을 치켜들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언덕을 올라오는 차 소리를 알아듣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창고에서 나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몸에 배인 인사를 합니다. 진돌이의 콧잔등이 말끔합니다. 얼마 전 진돌이는 앞발로 콧잔등을 자꾸 긁었습니다. 진드기가 물어뜯어 딱지가 졌습니다. 기피제를 진돌이 콧잔등에 뿌렸습니다. 녀석은 냄새가 싫은 지 꽁무니를 뺐습니다. 오래 묵은 집이라 비바람이 몰아치면 진돌이 방은 물난리가 납니다. 벽을 타고 빗물이 스며 바닥이 흥건합니다. 물이 두려운 진돌이는 밤새 비를 맞으며 날을 셉니다. 비가 오면 밤중에도 진돌이를 비료 창고인 옆 칸으로 옮겨줍니다. 진돌이는 개줄을 끌러도 도망갈 줄 모릅니다. 어련히 알아서 옆방으로 들어갑니다. 순하기가 한량없는 진돌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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