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8

길냥이를 찾습니다.

녀석의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아침저녁 산책에서 녀석을 만난 지 일 년을 넘어섰습니다. 반가움에 그냥 ‘나비야! 나비야!’하고 부르면 녀석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이미지에 나타난 것처럼 녀석의 특징은 꼬리에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고지대에 산다는 눈표범처럼 꼬리가 아주 튼실합니다. 달리는 속도의 몸의 중심을 잡는 키 역할로 굵고 탐스런 꼬리가 받쳐줍니다. 녀석의 눈·코·입·귀 이목구비는 오밀조밀하여 귀엽기 그지없습니다. 산책에서 만나면 녀석은 제 양 정강이를 번갈아 비비며 반가움을 표합니다. 봉구산 자락을 따라가는 옛길에 올라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어름이면 고구마밭, 고추밭, 다랑구지를 지나는 오솔길에서 녀석은 어느새 저의 뒤를 쫓아 앞질러 달려갑니다. “나비야, 나비..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2

야생의 삶, 한 달을 넘어섰습니다. 녀석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잿빛 수놈은 토돌이, 누런 암놈은 토순이입니다. 토진이가 언니면서 누나이고, 토돌이와 토순이는 한배 쌍둥이인 셈입니다. 아침저녁 산책마다 눈을 크게 뜨고 울창한 아까시 숲을 둘러봅니다. 날이 갈수록 신록이 우거져 녀석들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며칠 녀석들을 지켜보니 토끼는 수놈 따로, 암놈 따로 생활하는 것 같습니다. 여명이 터오는 산책에서 세 놈이 눈에 뜨인 것은 단 한번입니다. 토진이와 토순이가 다정하게 제방길가에서 풀을 뜯을 뿐 토돌이는 영 볼 수 없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합니다. 아침 배는 결항입니다. 토순이는 호기심이 많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가 토끼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토끼 봤냐?” “예, 오늘은 토끼가 바..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토진이의 출신이 밝혀졌습니다. 갯벌에서 상합을 캐 호구지책을 삼는 대빈창 마을의 아주머니 한 분이 애완용 토끼 한 쌍을 길렀습니다. 잿빛토끼 수놈이 죽자 토끼풀 뜯기가 번거로웠는지 아주머니는 암놈인 흰토끼 토진이를 대빈창 해변 제방 끝머리에 풀어 놓았습니다. 잘 알다시피 토끼는 웬종일 풀을 오물거립니다. 다 자란 토진이지만 애완용이라 집토끼의 절반 크기 밖에 안합니다. 생명을 이어갈까 염려스러웠습니다. 토진이는 용케 마른 풀을 씹으며 겨울을 났습니다. 토진이가 사람 손은 벗어나 야생의 삶을 산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1일. 노동절 연휴를 맞아 가족들이 섬을 찾았습니다. 새끼토끼 한 쌍이 누이 손에 들렸습니다. 열흘 전 강화도에 나간 김에 풍물시장에 들러 토끼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오일장이 되어야..

세든 집이 하필이면?

나는 숭어 이마에 붙어사는 따개비야 / 나는 친구들처럼 바위나 말뚝에 붙어살지 않아 / 나는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어 / 숭어가 내 자가용이야 / 나는 세상을 떠도는 여행자야 / 그물을 피해 숭어가 내달릴 때 / 내 이마에서 물줄기 하나가 달려 나가지 / 멋있지? / 물고기들도 그림자를 볼 수 있다고 / 숭어가 물 위로 뛰어오를 때 / 쏴 하고 비명도 지르지만 / 나는 물 위 세상도 실컷 구경하는 따개비야 함민복의 시 「따개비」(46쪽)의 전문입니다. 대빈창 해변에서 돌아와 책장의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를 꺼냈습니다. 동시집의 구성은 시인의 동시와 화가 염혜원의 그림이 서로 마주보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마에 붙은 따개비가 귀찮은지 숭어가 눈을 흘겼습니다. 제방 아래까지 밀려 온 부표에 다..

버섯도 잠을 잔다.

위 이미지는 3월 19일 아침 9시 주문도의 큰 동네 진말의 버섯접종 모습입니다. 비닐하우스에 차광막을 씌운 작업장입니다. 뉘인 통나무는 미루나무입니다. 원목은 3개월 전에 준비합니다. 버섯은 느타리버섯입니다. 드릴로 원목에 구멍을 뚫는 데 날이 스톱퍼(종균의 크기만큼 깊이를 맞춘 드릴 날) 처리되어 작업이 아주 편리합니다. 표준목은 크기가 1m20㎝로 지름은 15 ~ 20㎝입니다. 성형종균 1판(530구)이면 표준목 7 ~ 8개를 접종합니다. 원목이 굵거나 가늘 경우 종균 접종량을 적당하게 조절합니다. 1판의 가격은 작년 3,500원이었는데, 올해 4,000원으로 올랐습니다. 느타리버섯 성형종균은 작년부터 농가에 보급되었습니다. 전에 느타리버섯은 병종균만 가능했습니다. 느타리버섯의 원목은 미루나무, 은..

참새가 닭장을 거저 찾아오랴

북한 속담에 ‘참새가 방앗간을 거저 찾아오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행동이든 추구하는 목적이 있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느리 마을은 집집마다 닭을 키웁니다. 따뜻한 날씨에 노곤함이 밀려옵니다. 춘분이 내일 모레입니다. 양지바른 모퉁이에 얼기설기 폐그물로 엮은 닭장에 장닭 1마리와 암탉 7마리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물코가 넓은 폐그물 사이를 참새 예닐곱 마리가 바람처럼 가볍게 드나듭니다. 참새들은 땅바닥에 흩뿌려진 사료를 쪼거나, 물그릇에 첨벙 들어가 물장난을 치며 놉니다. 소가 닭쳐다보듯 닭은 참새에게 무신경합니다. 참새에게 닭장은 먹이와 물의 공급처였습니다. 저는 초겨울 주문도에 터를 잡았습니다. 돌아오는 첫봄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선창으로 향하는 언덕바지를 내려가는데 앞집의 흰 장닭..

외딴 섬 구멍가게

어름판니다 개지렁이 있음니다 낙시봉 있음니다 『담배, CCTV 녹화중, 감시 카메라 작동중』 스티커 석 장은 분명 명절날 고향섬을 찾은 자식들의 작품이 틀림없습니다. 구멍가게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강화도와 서도 군도를 오가는 항로의 여객선 선장이었습니다. 자녀들은 자라서 대처로 출가했고, 아내는 고생만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겨우내 찾는이 없는 외딴 섬 구멍가게의 출입문은 오늘도 굳게 닫혔습니다. 산자락아래 바투 앉아 북향을 바라보는 선창가 가게의 겨울 햇살은 가난하기 그지없습니다. 세찬 바닷바람과 햇살 한 줌 비추지 않는 냉랭한 그늘아래 잠긴 가게는 겨울잠에 빠진 짐승 같습니다. 막종이에 할아버지가 쓴 공고문은 추석 전후에 종이테이프로 붙였습니다. 씨알이 굵은 망둥어를 선창 부잔교에서 낚시하는 외지인들..

시간을 거스르는 풍경

한 선교단체의 훈련원으로 쓰이고 있는 폐교 현관 앞에서 내려다 본 운동장 풍경입니다. 트랙터와 경운기가 가득합니다. 운동장에서 교사로 오르는 계단 양옆 측백나무의 가지가 제멋대로 허공에 뻗쳤습니다. 교사의 깨진 유리창으로 매운 찬바람이 들락거립니다. 페인트가 벗겨진지 오래인 허름한 건물이 겨울 싸늘한 대기에 몸을 움츠립니다. 경사면 계단식으로 조성된 화단 윗줄 일렬종대로 띄엄띄엄 늘어선 동상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운동장 정경을 내려다봅니다. 주문도의 농기계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년 중 행사인 농기계수리가 벌어졌습니다. 뭍에서 단체로 건너 온 농기계정비기술자들이 1년 전 손봤던 농기계들을 다시 기름을 먹이고 있습니다. 섬의 농기계는 수륙양용입니다. 버스가 없는 섬에서 경운기와 트랙터는 대중교통 수단입니다..

대빈창 비행운

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한 줄기의 비행운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두텁게 퍼져 나가고, 바로 위에 날카롭고 가는 새 비행운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해는 바다로 떨어지고 벌겋게 하늘을 수놓은 북새가 가라앉았습니다. 어두워지는 대빈창 해변 하늘로 쏜살같은 비행운이 푸른 하늘에 일직선의 흰 줄기를 남겼습니다. 오늘따라 디카나 휴대폰이 손에 없습니다. 봉구산자락을 거슬러 오르는 옛길을 버리고 급한 마음에 다랑구지 들녘을 가로지르는 농로 고갯길을 헐레벌떡 뛰었습니다. 어머니께 건네받은 디카를, 짙어가는 어둠에 조바심을 내며 대빈창 해변 하늘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렀습니다. 대기 속으로 퍼지며 엷어지고 두터워진 두 줄기의 비행운이 한 몸이 되었습니다. 김애란의 세 번째 소설집 「비행운」이 떠올랐습니다. 특이하게 수..

목마른 섬들

“물을 퍼 올리는 양수기를 가동했네.” “아니, 요새 가뭄은 해거리하나” “짠물 먹는 사정은 먼 남해 섬들 얘기려니 여겼는데.” 5일간 이어지는 설 연휴를 맞아 고향 섬을 찾은 귀성객들의 입에서 나 올 소리들입니다. 주문도 저수지는 겨우내 양수기를 가동해 농수로에 조금이라도 물이 고이면 거꾸로 저수지로 퍼 올렸습니다. 주문도 저수지는 유역면적은 작지만 고갈처럼 깊어 유효저수량이 많습니다. 섬의 큰 마을인 진말의 25만평 논농사를 책임지는 대들보입니다. 2년 전 초여름 「갈매기가 날씨를 예보하다」의 저수지입니다. 그때 물이 가득한 저수지에서 이른 더위를 피해 갈매기들의 자맥질이 한창이었습니다. 늦은 겨울, 바닥이 보이는 저수지에 천둥오리가 날아와 농부들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자적 물놀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