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참새가 닭장을 거저 찾아오랴

대빈창 2015. 3. 19. 07:30

 

 

 

북한 속담에 ‘참새가 방앗간을 거저 찾아오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행동이든 추구하는 목적이 있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느리 마을은 집집마다 닭을 키웁니다. 따뜻한 날씨에 노곤함이 밀려옵니다. 춘분이 내일 모레입니다. 양지바른 모퉁이에 얼기설기 폐그물로 엮은 닭장에 장닭 1마리와 암탉 7마리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물코가 넓은 폐그물 사이를 참새 예닐곱 마리가 바람처럼 가볍게 드나듭니다. 참새들은 땅바닥에 흩뿌려진 사료를 쪼거나, 물그릇에 첨벙 들어가 물장난을 치며 놉니다. 소가 닭쳐다보듯 닭은 참새에게 무신경합니다. 참새에게 닭장은 먹이와 물의 공급처였습니다. 

저는 초겨울 주문도에 터를 잡았습니다. 돌아오는 첫봄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선창으로 향하는 언덕바지를 내려가는데 앞집의 흰 장닭이 갑자기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세우고 달려들었습니다. 덩치도 보통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수닭은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만 보면 무조건 돌진합니다. 앞집 형이 껄껄 웃으며 자초지종을 얘기합니다.

“맞다. 저 놈은 분명 미친닭이다.”

닭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됐을 때 불안함을 느끼는 것을 트라우마(Trauma)라고 합니다. 허공을 배회하던 솔개가 앞마당을 노닐던 닭을 덮쳤습니다. 하지만 매는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했습니다. 장닭은 큰 덩치로 목숨을 건졌지만 정신적 충격이 컸습니다. 솔개한데 채인 후유증으로 꼭지가 돌아버린 수탉은 사람만보면 달려들어 부리로 쪼았습니다.

 

참새 / 콩새 / 딱새 / 박새 / 멧새 / 노랑턱멧새 / 곤줄박이 / 오목눈이 / 방울새 / 종다리 / 직박구리 / 개똥지바퀴 / 굴뚝새 / 꾀꼬리 / 휘파람새 / 개개비 / 찌르레기 / 파랑새 / 딱따구리 / 멧비둘기 / 어치 / 까치 / 까마귀 / 뀡 / 뻐꾸기 / 소쩍새 / 쑥독새 / 매 / 황조롱이 / 괭이갈매기

 

우리나라 텃새 30종입니다. 내가 사는 섬에서 흔히 눈에 뜨이거나, 울음소리로 구분할 수 있는 녀석들입니다. 봉구산자락을 끼고 거니는 아침저녁 산책의 관목울타리와 가시덤불에서 조잘대는 참새와 박새, 딱새, 노랑턱멧새. 전신주 위에서 요란하게 울부짖은 까마귀와 까치. 허공을 배영하듯 날아다니는 직박구리. 인가 주변을 배회하며 사람을 겁내지 않는 곤줄박이. 고목에 구멍을 뚫는 딱따구리의 둔탁한 망치질 소리. 긴 여름 한낮의 적요에 파문을 일으키는 뻐꾸기 소리. 어둠의 장벽에 틈을 내며 잠을 뒤척이게 하는 소쩍새의 애끓는 울음 등.

레이첼 카슨(1907 ~ 1964년)은 「침묵의 봄」에서 농약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봄을 알리는 새소리가 사라져버린 죽음처럼 고요한 자연의 침묵을 경고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참새는1989년 100ha당 425.7마리에서 2007년 111.5마리로 1/4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원인은 살충제, 제초제 과다살포로 인한 곤충과 먹이식물의 감소 때문입니다. 재잘거리며 수다를 떠는 귀여운 텃새인 참새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사는 섬은 생태환경이 살아있어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아침잠을 깹니다. 바야흐로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절기입니다.

“처음 만나는 동물이 뱀이면 일년내내 몸이 무겁고, 나비면 몸이 가볍다고 하는데, 에구 나는 뱀을 봤네.”

둥글레를 캐 오던 어머니가 일러주었습니다. 구순이 내일인 아랫집 할머니의 소박한 믿음(?) 입니다. 엊그제 양지바른 텃밭에서 뱀을 보았다고 걱정이 많으십니다. 올 한해 참새처럼 가볍고 날랜 일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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