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교단체의 훈련원으로 쓰이고 있는 폐교 현관 앞에서 내려다 본 운동장 풍경입니다. 트랙터와 경운기가 가득합니다. 운동장에서 교사로 오르는 계단 양옆 측백나무의 가지가 제멋대로 허공에 뻗쳤습니다. 교사의 깨진 유리창으로 매운 찬바람이 들락거립니다. 페인트가 벗겨진지 오래인 허름한 건물이 겨울 싸늘한 대기에 몸을 움츠립니다. 경사면 계단식으로 조성된 화단 윗줄 일렬종대로 띄엄띄엄 늘어선 동상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운동장 정경을 내려다봅니다. 주문도의 농기계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년 중 행사인 농기계수리가 벌어졌습니다. 뭍에서 단체로 건너 온 농기계정비기술자들이 1년 전 손봤던 농기계들을 다시 기름을 먹이고 있습니다. 섬의 농기계는 수륙양용입니다. 버스가 없는 섬에서 경운기와 트랙터는 대중교통 수단입니다. 논밭을 일구고, 갯벌을 오가며 채취한 조개를 동네로 운반합니다.
“짠기에 당해낼 수 없다니깐.”
늦겨울 한기에 땀방울을 흘리며 뽑아놓은 경운기 바퀴에 연신 곡괭이를 휘두르는 정비기술자가 투덜거립니다. 짠물에 쩐 경운기 앞바퀴 타이어와 휠이 엉겨 붙어 복스대가 쓸모없습니다. 곡괭이 넓은 날을 틈에 쑤셔 넣어 힘으로 분리합니다. 찬 대기 속으로 흩어지는 그들의 입김을 보며 나의 기억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오릅니다.
“엄마, 눈알을 왕모래로 마구 비비는 것 같아요.”
나는 눈알을 쑤시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방안을 뒹굴었습니다. 막내아들의 고통에 어쩔 줄 몰라 어머니는 눈꺼풀을 젖히고 연신 찬물만 방울방울 떨어뜨렸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눈알을 뽑아내는 듯한 통증은 더해 갔습니다. 그때 저녁을 자시고 말을 오신 이웃집 아주머니가 생사과 즙을 안구에 떨어뜨리자 차츰 고통이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저의 첫 직장을 알선한 동네 형의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진학을 두고 부자간의 첨예한 갈등은 사고로 인한 저의 병원 입원으로 끝을 보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자 계절은 초여름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동네 형의 주선으로 들어 간 김포시내 초입의 ○○ 농기계수리점이 첫 직장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챙겨 주신 도시락을 들고 출근 한지 열흘이 지났을까. 그날 고성능분무기 받침대 용접을 했습니다. 기계에 영 맹추였던 저는 속된 말로 ‘아다리’를 먹은 것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퇴근길에 억수같이 퍼부은 술로 저는 다음날 결근을 하고 말았습니다. 숙기가 없던 저는 한 달이 못돼 첫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날건달로 농사일을 돕다, 도금공장 노동자 작은 형의 도움으로 꼴같잖은 삼수생 몰골로 대학문을 밟았습니다. 386세대. 가두시위. 화염병과 최루탄. 위장취업. 공장노동자. 산재. 낙향. 외딴 섬 정착. 단순소박한 삶. 먼 길을 에돌아왔습니다. ‘기름쟁이(?)’들은 흔히 곤조가 세다고 비아냥 소리를 듣습니다. 하루 종일 기름을 튀기며 서서하는 고된 일인데, 해가 떨어지면 여지없이 술과 고스톱에 매달립니다. 새벽녘 노루잠을 자고 다음날 까딱없이 일을 치고 나갑니다. 나의 눈길은 애틋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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