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름판니다
개지렁이 있음니다
낙시봉 있음니다
『담배, CCTV 녹화중, 감시 카메라 작동중』 스티커 석 장은 분명 명절날 고향섬을 찾은 자식들의 작품이 틀림없습니다. 구멍가게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강화도와 서도 군도를 오가는 항로의 여객선 선장이었습니다. 자녀들은 자라서 대처로 출가했고, 아내는 고생만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겨우내 찾는이 없는 외딴 섬 구멍가게의 출입문은 오늘도 굳게 닫혔습니다. 산자락아래 바투 앉아 북향을 바라보는 선창가 가게의 겨울 햇살은 가난하기 그지없습니다. 세찬 바닷바람과 햇살 한 줌 비추지 않는 냉랭한 그늘아래 잠긴 가게는 겨울잠에 빠진 짐승 같습니다.
막종이에 할아버지가 쓴 공고문은 추석 전후에 종이테이프로 붙였습니다. 씨알이 굵은 망둥어를 선창 부잔교에서 낚시하는 외지인들이 갯지렁이를 망둥어 낚시의 이감으로, 낙시봉은 대나무 낚시에 매다는 낚시추로 사가기 때문입니다. 아리송한 것이 얼음입니다. 아마! 할아버지에게 얼음과자 즉 아이스크림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여름 한철 섬을 찾은 피서객들과 할아버지가 간혹 실랑이를 벌입니다. 아이에게 과자봉지를 안기려던 젊은 엄마가 유통기한 날짜를 확인하고 기겁하여 할아버지에게 따지고 듭니다. 할아버지는 그저 뒷머리만 긁적일 뿐입니다. 젊은 여자가 불같이 화를 내는 이유를 할아버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하던 담배손님도 떨어졌습니다. 농협 마트가 담배판매 허가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유통기한 지난 구멍가게보다 신선한 상품이 진열된 마트를 찾으며 담배도 구입합니다. 설상가상 세월호 참사는 가스통 장사도 접게 만들었습니다. 외딴섬의 LPG 가스통은 주민이 스스로 빈 가스통을 가게에 부리고, 새 가스통을 직접 집에 운반하여 밸브를 연결합니다. 가스통의 여객선 운반이 금지되었습니다. 이제 섬에 들어오는 가스통은 화물용 독선을 이용합니다. 가스통 화물선이 선창에 접안하면 마을 안내방송이 나오고 주민들은 경운기나 화물차로 빈 가스통과 새 가스통을 교환 합니다.
겨우내 가게문을 밀치는 뜨내기손님도 없습니다. 피서철 섬을 찾는 사람들이 몰려들어야 유리문이 열리고, 소금기 밴 바람이 퀴퀴한 곰팡내를 거두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여객선으로 받은 과자꾸러미들을 진열대에 올릴 것입니다. 지난 추석 안내문이 여적 그대로입니다. 북향을 바라보고 앉은 외딴섬 선창의 구멍가게 미닫이는 오늘도 굳게 잠겼습니다. 출입구에 파라솔용 플라스틱 의자가 겹겹으로 쌓였습니다. 우중충한 차양이 무거운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가게앞 도로와 바다의 경계 월파벽 너머로 파도가 넘실거립니다. 기다란 이웃섬 꽃치 제방이 유리문에 모습을 비추었습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섯도 잠을 잔다. (0) | 2015.04.02 |
---|---|
참새가 닭장을 거저 찾아오랴 (0) | 2015.03.19 |
시간을 거스르는 풍경 (0) | 2015.03.09 |
대빈창 비행운 (0) | 2015.02.23 |
목마른 섬들 (0) | 2015.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