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8

진돌이는 고집이 세다.

진돌이가 세 살이 되었습니다. 헛나이를 먹었습니다. 작은 형이 아는 이한테서 거저 얻은 진돗개 트기인 진돌이는 재작년 동짓달에 우리 식구가 되었습니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섬에 들어 온 강아지가 가여웠습니다. 섬에 터를 잡고 다섯 번째 개인 진돌이는 수놈이었습니다.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고갯길에 앉은 집은 바람꼬지였습니다. 겨울 바닷바람에 강아지를 한데서 키울 수 없었습니다. 진돌이는 임시방편으로 아궁이 불을 때는 봉당에 살게 되었습니다. 보일러의 온수호스가 봉당에서 각 방으로 연결되어 항상 온기가 훈훈했습니다. 미닫이로 굳게 잠긴 봉당에서 똥오줌을 가릴 줄 모르는 강아지는 바닥에 그대로 일을 보았습니다. 아침이면 어머니와 나는 번갈아가며 아궁이의 재를 부삽에 담아 진돌이의 배설물을 뒤처리했습니다...

역진화한 토진이가 기특하다.

엄나무와 머루가 터 잡은 바위벼랑이 대빈창 해변의 제방 끝입니다. 물이 밀면 벼랑 발잔등에 흰 거품이 일렁이고, 물이 쓸면 벼랑에서 이어진 돌너덜이 갯벌로 이어집니다. 아침저녁 산책의 반환점입니다. 낮은 산자락의 해송 숲이 해안을 띠처럼 감쌌습니다. 솔숲에서 벼랑까지 0.5㎞ 제방이 이어집니다. 해안에 바투 다가 선 산줄기가 제방을 따라가며 고도를 높입니다. 벼랑으로 다가갈수록 마루금이 칼날처럼 날카롭습니다. 잡목이 숲을 이룬 직각에 가까운 산비탈에 고라니가 다닌 길이 선명합니다. 토끼가 터 잡은 이곳은 삼태기 형국입니다. 이곳에 오려면 제방을 타는 외길 밖에 없습니다. 바다에서 밀려 온 골안개가 산자락을 기어오르는 이른 아침에 저는 생뚱맞게 토끼를 만났습니다. 작년 4월 17일에 올린 ‘발붐 발붐 집 ..

막내고모부의 죽음 - 2

막내고모부는 향년 72세였다. 내 기억으로 30대 후반에 내가 살던 고향 ‘한들고개’로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흘러 들어왔다. 고교를 졸업한 후 세상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알코올에 기댄 주먹질로 나날을 보내던 나를 고모부는 측은하게 보았다. 일거리가 생기면 나를 데모도로 꼭 데리고 다녔다. 목수, 미장이, 보일러 수리, 상·하수도 공사 등 고모부의 눈썰미와 손재주는 만능이었다. 하지만 농사일은 의외로 젬병이셨다. 밤 9시가 넘어서 고모부가 사시던 ‘한들고개’ 어른들 10여명이 문상을 왔다. 동네 분들이 미얀마로 관광을 가셨다가 오늘 돌아오셨다. 아주 오래 전 그들의 집은 고모부의 잔손길이 구석구석 미쳤을 것이다. 그 인연이 겨울로 가는 길목의 쌀쌀한 늦은 밤이지만 발길을 옮기게 했을 것이다. 자정이 넘었다..

막내고모부의 죽음 - 1

1947년 봄 / 심야 / 황해도 해주의 바다 /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 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 스물 몇 해를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故 김종삼의 ‘민간인’이다. 어렵게 배가 떴다. 풍랑·강풍주의보 발효로 배는 주문도 앞바다에 이틀간 발이 묶였다. 13일 목요일 오후 3시에서 4시를 가고 있다. 외포리 포구에서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안. 어머니가 말을 붙였다. “사람이 없다는 구나. 고모부가 피난민이라 외톨이어서 그렇구나.” 그때 나는 시를 떠올렸다. “옥상에서 어제 떨어졌다는구나.” 나는 아득해졌다. “그럼 자살하셨어요.” 누이는 어제 막내고모부의 부음을 알리면서 사실을 애써 내게 숨겼다. 장례식장은 썰렁했다. 아버지, 숙부가 이..

말도 쌍바위는 알고 있다.

말도(唜島) 쌍바위를 보며 저는 단원의 그림 총석정(叢石亭)을 떠올렸습니다. 총석정은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 총석리 바닷가의 누정으로 관동팔경의 하나입니다. 이곳 바닷가에 주상절리(columnar joint, 柱狀節理)에 의해 형성된 절벽과 바위가 신기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총석정은 동해 해금강에 있지만, 쌍바위는 서해의 작은 섬 말도에서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서해는 신생대 제4기 해수면 변동에 의해서 생성되었습니다. 제4기는 홍적세(1만 ~ 160만년전)와 충적세(현재 ~ 1만년전)로 구분됩니다. 이 시기는 반복적인 기후변화에 의한 ‘빙하시대’로 불리기도 합니다. 마지막 빙하기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아 서해는 중국대륙과 연결된 평탄한 육지였습니다. 이후 해빙기에 해수면이 ..

짐승도 이웃은 안다.

대빈창 해변 바위벼랑을 반환점으로 도는 아침·저녁 산책은 길동무들을 만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매애애 ~ 매애애 ~~ 흑염소 두 녀석이 변함없이 아는 체를 합니다. 감나무집형이 오늘도 어김없이 녀석들을 잡풀이 우거진 묵정밭에 매어 놓았습니다. 녀석들은 풀을 찾아 매일 자리를 옮깁니다. 야 ~ 옹 야~ ~ 옹 애달픈 녀석의 울음이 고추밭에서 들려옵니다. 나비야 이리 ~ 와 하루 두 번 만나는 길냥이는 눈표범처럼 굵고 튼실한 꼬리를 치켜세우고 저를 따라 옵니다. 하지만 녀석은 해변 입구와 마을뒤 언덕길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봉구산자락 고추밭, 고구마밭, 땅콩밭, 논두렁이 녀석의 활동영역입니다. 저를 따라 마을에 두서너 번 따라왔으나, 집고양이들의 텃세에 쫓겨났습니다. 내딛는 걸음마다 발등에 얼굴을 부비며 앞서..

탈 난 쇠소(鐵牛)를 왕진(往診)가다.

서도(西島) 군도(群島)는 4개의 유인도와 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람 사는 섬은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말도입니다. 하루 두 번 강화도를 오고가는 여객선 삼보 12호가 닿지 못하는 섬이 말도(唜島)입니다. 말도는 일주일에 세 번 면소재지인 주문도와 행정선으로 연결됩니다. 이래저래 사람이 살아가는데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말도도 농사짓는 섬으로 논이 3만평이나 됩니다. 쇠소(鐵牛)가 탈이 나면 수의사가 왕진(往診)을 가야 합니다. 위 이미지는 10월 초순 말도 공터의 농기계수리 모습입니다. 말도는 4월 초순 모내기를 앞두고, 10월 초순 벼베기를 앞두고 1박2일로 두 번 일정을 잡습니다. 올해도 여지없이 수의사(농기계정비기술연구회) 두 분이 말도 쇠소들의 치료를 맡았습니다. 보시다시..

가을이 깊어가는 구나!

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아침 산책을 반시간 뒤로 늦추었습니다.24절기 가운데 17번째 절기인 한로(寒露)가 지났습니다. 찬이슬이 맺히는 시기로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바쁘기 그지없는 때입니다. 여름 꽃들은 모두 지고, 가을 단풍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억새꽃이 한창입니다. 스러지기 전 서녘 하늘의 보름달이 낯이 아직 붉습니다. 한글 날 전야의 보름달은 유난히 붉었습니다. 바로 붉은 달, 불러드문(Blood Moon)으로 불러지는 개기월식이 일어났습니다. 개기월식은 태양과 지구, 달이 일직선상에 위치해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현상입니다. '붉은 달' 현상은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두터운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파장이 짧은 푸른빛은 모두 산란하고 붉은 빛만 남아 ..

까마귀 이제 바다를 넘보다.

“이만하게 자랐겠는 걸.” 어머니가 큰 호박을 움켜잡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저녁산책이었습니다. 무려 5개월 만에 녀석을 다시 만났습니다. 4월 중순 대빈창 제방길이 바위벼랑에 막힌 외진 곳. 어머니는 녀석이 발붐발붐 집을 나왔다가 길을 잃어 돌아가지 못했다고 쯧쯧 혀를 차셨습니다. 대빈창 제방길을 가파른 산비탈이 바투 따라가다 바위벼랑이 한굽이 바다를 막아섭니다. 제방과 이어지는 산자락은 온통 아카시나무가 뒤덮었습니다. 아카시와 참나무, 칡과 머루, 키 작은 관목과 사람 키를 웃자란 들풀로 신록이 울창한 산속으로 녀석이 몸을 숨겼습니다. 안경을 쓴 것처럼 눈가에만 둥그렇게 검은 무늬가 박힌 흰 토끼는 덩치가 그대로였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녀석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토진아!” 하지만 녀석은 들은체만체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는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전통 명절입니다. 가을 추수를 마치고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드리며 차례를 지내는 풍성함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음력은 빨라 추석이 백로이며, 말복과 입추가 같은 날입니다. 그래서 윤달이 9월에 들었습니다. 이른 추석으로 들녘의 벼이삭은 아직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가을 과일 포도는 간신히 첫물을 낼 수 있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강화도와 서도(西島) 군도(群島)를 오가는 삼보12호가 아차도에 들렀다가 주문도 선창에 접안하는 모습입니다. 9월 7일 일요일 오후 3시입니다. 배는 주문도 앞바다에 정박하지 않고 차랑과 승객을 싣고 곧바로 강화도로 떠납니다. 카페리호는 년 중 두 번 증편 운항합니다. 8월 피서기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