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8

아차도의 목선(木船)

위 이미지는 강화도와 서도 군도(群島)를 하루 두 번 오가는 여객선 삼보12호 선상에서 잡았습니다. 오후 2시배가 정박지 주문도에서 출항하여 아차도를 거쳐 볼음도로 향하는 내해(內海) 입니다. 목선을 부리는 주민수가 아차도 4분, 주문도 2분, 볼음도 1분이 서도(西島)의 전부입니다. 가장 작은 섬인 아차도가 가장 많은 목선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한때 길거리의 강아지도 배추잎사귀(만원권)를 물고 다녔다는 파시가 섰던 옛 영화의 반증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적 여건이기도 합니다. 아차도의 논 면적은 채 만평도 되지 못합니다. 농가소득이라고 야트막한 산자락을 일군 밭의 고구마와 고추로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섬의 막내가 환갑이 넘었습니다. 목선의 부부어부가 그물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눈치 빠른 갈매기들..

어머니의 구심력(求心力)

“어머니, 돌보시느라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병원을 나설 준비를 진작 마치고 마음이 조급해진 간병인 손에 선물세트를 안겼습니다. 지난 설에 작은형이 섬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두 개의 선물세트가 서랍장 구석에 여적 놓였었습니다. 어머니 병문안을 오면서 하나를 챙겼습니다. 우리 동포 조선족에 대한 마음 한 구석 측은지심이었으리라. 위 이미지는 5월 2일 새벽 6시. 서울 인근의 위성도시 대학병원 정문 로비에서 휠체어에 앉아 길 건너 아파트 군락을 바라보는 어머니 뒷모습입니다. 이날 아침 회진을 도는 의사께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가 퇴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술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의외로 선생은 선선히 들어주셨습니다. 퇴원수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병원비를 정산하고 약을 타고 외래진..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8

“절름발이를 대빈창 해변에 풀어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〇 〇 네가 달라고 그래서요.” 텃밭을 일구는 모퉁이집 안주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가 말끝을 흐립니다. 대빈창 해변 제방길가에서 도망치는 절름발이를 토진이가 쫓고 있습니다. 이런 걸 두고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제대로 듣지 못한 〇 〇 씨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그이도 상합을 캐러 나갈 적마다 홀로 노는 토진이가 안쓰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천방지축 토돌이는 산중에서 도(?) 닦느라 두문불출입니다. 사람 손에 키워지던 어린 시절 한 배 오빠가 죽자 토진이는 대빈창 해변에 내버려졌습니다. 용케 야생의 삶을 살아오면서 집토끼 토순이를 만났으나, 그는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토진이는 외로움에 사무..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7

이미지의 토끼는 왼쪽은 선창 절름발이, 오른쪽은 대빈창 해변 토진이입니다. 녀석들은 가뭄과 추위의 올 겨울을 기특하게 이겨냈습니다. 녀석들은 친구를 잃고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절름발이의 단짝 털북숭이는 지난 정월 목줄이 풀어진 개의 본능에 난데없이 주검을 당했습니다. 절름발이는 혼자되어 대빈창가는 길 모퉁이 집 뜰 안에서 놀다 발붐 발붐 집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선창 길 월파벽 앞 논 한 필지가 용케 남았습니다. 길 아래 논 두둑은 아스팔트와 잇대었습니다. 절름발이가 마른 풀더미에 몸을 숨기고 해바라기를 합니다. 먹을 것이 궁해진 녀석이 논바닥의 짚과 벼 그루터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토진이는 외로움에 익숙해졌습니다. 녀석이 사석더미 뒤 산비탈에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야생의 겨울을 두 번 난 만큼 녀석에..

주문도에서 띄운 대한(大寒) 통신

‘대한이 소한네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습니다. 그만큼 소한 추위가 매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올 추위는 대한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열흘째 매서운 동장군이 연일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지난 휴일 오후배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뭍에 나갔습니다. 예약된 병원진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표를 끊고 선창 매표소를 나서는데 난데없이 한 주검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뾰족한 입가에 선혈이 베인 선창토끼 털북숭이의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토진이가 터 잡은 대빈창 해변 제방 끝 삼태기 지형에 매여 있던 4 마리의 개중 가장 큰개의 목줄이 풀렸습니다. 녀석은 해변 솔밭에서 야영을 한 등산객을 쫒아 선창까지 길을 나섰다가 모퉁이집 토끼들을 발견하고 야성을 드러냈습니다. ..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6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합니다. 푸근한 낮 기온으로 대기 중의 수분이 밤새 안개로 변해 섬을 포위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점령군 안개로 여객선은 맥을 못 추고 아침·낮 배 모두 결항입니다. 화단의 상사화가 계절감각을 잊고 촉을 내밀었습니다. 기상학자들은 엘니뇨현상과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겨울이 오히려 지내기 편하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토진이가 두 번째 겨울을 나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지난 연말 4개 월 여 만에 잠깐 뒷모습을 보인 토돌이는 여전히 행방불명입니다. 하지만 녀석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제게 새해의 큰 축복처럼 여겨집니다. 수놈 집토끼인 토돌이는 몰라보게 덩치가 커졌습니다. 천방지축인 녀석..

선창에 토끼가 나타났다. - 3

잔나비띠 병신년 새해 첫 글을 토끼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제 글에 등장하는 토끼는 두 부류입니다. 이미지의 선창 토끼 털북숭이와 절름발이 그리고 대빈창 해변의 야생으로 되돌아간 애완토끼 토진이입니다. 2016년 첫 글을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6」으로 잡았었습니다. 엊그제 수놈 토돌이가 근 4개월 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탕아가 돌아온 듯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토진이를 찾으려 산비탈에 눈길을 주며 걷는데 길섶 우거진 마른풀더미에서 무언가 후다닥 소나무 숲으로 튀어 달아났습니다. 어린 고라니로 짐작했는데, 뒷모습이 꼬리 짧은 회색털빛 토끼였습니다. 분명 토돌이였습니다. 신년 첫 글을 돌아온 토돌이(집토끼 수놈)로 잡고 녀석의 모습을 담으려 눈을 부릅뜨고 대빈창 해변에 나갔지만 감감무소식입니다. 할..

살아 숨쉬는 사파이어

9월의 탄생석 사파이어는 진실, 정직, 성실을 상징합니다. 신성한 사파이어는 마음과 몸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사람들은 여겼습니다. 사파이어를 지니면 건강, 생명을 지켜주고 삶이 평화로워진다는 믿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사파이어는 가을 하늘을 연상시키는 맑고 푸른색입니다. 흰 고양이 사파는 홍채가 청명한 가을 하늘색을 띠어 이름 지어졌습니다. 사파는 사무실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사파가 엉뚱하게 민원대 위 홍보물을 이부자리삼아 낮잠에 빠졌습니다. 오늘은 대설입니다. 올 겨울은 눈이 귀합니다. 잔뜩 찌푸린 낮게 가라앉은 하늘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찬비만 줄금 거렸습니다. 일상이 바쁜 사파의 네 발이 흰 눈빛에서 우중충한 겨울 낯빛을 닮아갑니다. 추운 계절. 사파가 즐겨 찾는 곳은 프린터 위 복사지가 출력되는 ..

선창에 토끼가 나타났다. - 2

“늑대야!” 모퉁이집 주인이 토끼 지킴이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녀석은 내가 토끼장에 다가서면 발뒤꿈치를 깨 물 것처럼 가깝게 다가섭니다. 하루에 두서너번 녀석과 조우하는 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무게가 실린 위협적인 울음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공포를 상상하십니까. 아닙니다. 녀석의 짖는 소리는 허공을 찢는 꽹과리 소리처럼 촐싹거립니다. 꼬리를 바짝 세운 늑대가 카메라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습니다. 나는 애완견의 종에 대해 무지합니다. 내 눈에 주먹만 한 강아지는 도통 섬 풍경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얼핏 치와와 같기도 합니다. 치와와의 피가 섞인 트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림짐작으로 녀석은 도회지 삶을 즐기다 졸지에 섬개로 전락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도시의 자녀들이 무슨 사정이 생겨 녀석을 서해 작은 외딴..

구라탕 터놓는 날

할멈 둘이 앞서 걸어가고 있다 살얼음 갯바위 틈새 / 얼어죽은 한 마리 주꾸미라도 주우려 갯바위를 걸어서 / 굴바구니 들고 갯티에 가는 생계 줍는 아침 서해의 섬들을 시의 영토에 편입시켜 가난하고 외로운 섬사람들의 삶을 노래한 시인 이세기의 「생계 줍는 아침」의 전문입니다. 여기서 ‘갯티’가 주문도 대빈창 해변의 ‘구라탕’입니다. 굴밭을 말합니다. 오늘은 구라탕을 터놓는 날입니다. 서도(西島)의 행정구역은 여섯 군데입니다. 주문도·볼음도 둘, 아차도·말도 한 곳. 행정구역별로 굴밭을 가꾸고 지키며 살아갑니다. 주문2리의 자연부락은 대빈창·느리·꽃동네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문2리의 공동 굴밭이 ‘구라탕’입니다. 주민들은 오늘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굴밭에 들어가 굴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구라탕은 볼음도와 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