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선창에 토끼가 나타났다. - 2

대빈창 2015. 11. 24. 03:14

 

 

 

“늑대야!”

 

모퉁이집 주인이 토끼 지킴이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녀석은 내가 토끼장에 다가서면 발뒤꿈치를 깨 물 것처럼 가깝게 다가섭니다. 하루에 두서너번 녀석과 조우하는 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무게가 실린 위협적인 울음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공포를 상상하십니까. 아닙니다. 녀석의 짖는 소리는 허공을 찢는 꽹과리 소리처럼 촐싹거립니다. 꼬리를 바짝 세운 늑대가 카메라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습니다. 나는 애완견의 종에 대해 무지합니다. 내 눈에 주먹만 한 강아지는 도통 섬 풍경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얼핏 치와와 같기도 합니다. 치와와의 피가 섞인 트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림짐작으로 녀석은 도회지 삶을 즐기다 졸지에 섬개로 전락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도시의 자녀들이 무슨 사정이 생겨 녀석을 서해 작은 외딴섬 할아버지 집에 맡겼을 것입니다. 녀석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맹렬합니다. 구멍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녀석은 옆집 모퉁이 집에 의탁되었습니다. 밥값을 하려는 지 녀석은 토끼를 지키는데 혼신의 노력(?)을 경주합니다.

주인도 모르게 우리를 탈출해 선창가는 길섶의 까마중과 환삼덩굴을 뜯던 털북숭이와 절름발이는 우리에 가두어졌습니다. 날이 차가워지자 녀석들의 먹이를 구하는 일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우리 양은그릇에 날고구마가 가득 담겼습니다. 녀석들은 뾰족한 앞니로 고구마를 잘도 깎아먹습니다. 먹이감들이 매일 던져졌습니다. 고구마 순, 배추 잎, 무청, 무 밑둥, 콩깍지, 콩대, 낫으로 벤 풀 등. 어느 날 사료가 담겨진 개밥그릇이 토끼장에 옮겨졌습니다. 녀석들은 의외로 개 사료를 오독오독 깨물어 먹었습니다. 선창을 오가며 어쩔수 없이 나는 토끼장으로 다가갑니다. 우리를 두른 허술한 그물망 사이로 검지를 밀어 넣습니다. 털북숭이가 다가와 손가락 끝을 앞니로 잘근잘근 깨뭅니다. 깨물리지 않는 식감 때문인 지, 당근으로 착각한 자신의 우둔함을 깨우쳤는지 녀석은 이내 뒤돌아섭니다. 뒤에 앉아있던 다리가 불편한 절름발이가 다가섭니다. 녀석도 검지에 입을 가져갑니다. 지문에 녀석들의 이빨자국이 또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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